맹자 08 이루하(離婁下)

맹자(孟子) · 전국 맹가 · 번역·감수 허유

《맹자》 〈이루하〉 편의 전문 완역이다. 짧은 잠언풍 장과 긴 대화·서사가 섞여 있으며, 군신의 도리, 군자의 처신, 자득(自得)의 학문, 사람과 짐승의 차이, 효와 자기 성찰 등을 다룬다. 총 33장.

번역

1장

맹자가 말하였다. "순임금은 제풍(諸馮)에서 태어나 부하(負夏)로 옮겨 갔고 명조(鳴條)에서 죽었으니 동이(東夷) 사람이다. 문왕은 기주(岐周)에서 태어나 필영(畢郢)에서 죽었으니 서이(西夷) 사람이다. 두 곳의 거리는 천여 리나 떨어져 있고, 두 사람이 산 시대는 천여 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나 뜻을 얻어 중국에서 도를 행한 것은 마치 부절(符節)을 맞춘 듯이 똑같았다. 앞선 성인과 뒤의 성인이 그 헤아림은 하나였던 것이다."

2장

자산(子産)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맡았을 때, 자기의 수레로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사람들을 건너게 해 주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알지 못한 것이다. 해마다 십일월에 사람이 건너는 다리를 완성하고 십이월에 수레가 건너는 다리를 완성하면 백성이 물 건너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군자가 그 정치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갈 때 사람을 물리치는 것도 괜찮은데, 어찌 사람마다 일일이 건너게 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치하는 자가 사람마다 다 기쁘게 해 주려 하면 날마다 해도 부족할 것이다."

3장

맹자가 제 선왕에게 고하였다. "임금이 신하 보기를 자기 손발처럼 하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자기 배와 심장처럼 합니다. 임금이 신하 보기를 개나 말처럼 하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길 가는 사람처럼 합니다. 임금이 신하 보기를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하면 신하는 임금 보기를 원수처럼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예법에 옛 임금을 위하여 상복을 입는다 하니, 어떻게 하면 상복을 입어 줄 만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간언이 행해지고 말이 받아들여져 그 은택이 백성에게 내려가며, 신하가 사정이 있어 떠나면 임금이 사람을 시켜 그를 인도하여 국경을 나가게 하고 또 그가 가는 곳에 먼저 기별을 넣어 주며, 떠난 지 삼 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은 뒤에야 그 토지와 주택을 거두어들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예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신하가 그를 위하여 상복을 입습니다. 지금은 신하가 되어 간언해도 행해지지 않고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은택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않으며, 사정이 있어 떠나면 임금이 그를 붙잡아 가두고 또 그가 가는 곳에 곤경에 빠뜨리며, 떠나는 날에 곧바로 그 토지와 주택을 거두어들입니다. 이것을 원수라고 합니다. 원수에게 무슨 상복이 있겠습니까?"

4장

맹자가 말하였다. "죄 없는 선비를 죽이면 대부가 떠날 만하고, 죄 없는 백성을 죽이면 선비가 떠날 만하다."

5장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은 자가 없고, 임금이 의로우면 의롭지 않은 자가 없다."

6장

맹자가 말하였다. "예가 아닌 예와 의가 아닌 의를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다."

7장

맹자가 말하였다. "중도(中道)에 맞는 사람이 중도에 맞지 않는 사람을 길러 주고,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 없는 사람을 길러 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진 부형(父兄) 두기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만일 중도에 맞는 사람이 중도에 맞지 않는 사람을 버리고,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 없는 사람을 버린다면, 어진 자와 못난 자의 거리는 그 사이가 한 치도 되지 않을 것이다."

8장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하지 않는 바가 있은 뒤에야 큰 일을 할 수 있다."

9장

맹자가 말하였다. "남의 좋지 못한 점을 말하다가 뒤에 닥칠 우환을 어찌하려는가?"

10장

맹자가 말하였다. "중니(공자)는 지나친 일을 하지 않으셨다."

11장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말을 반드시 미덥게 하기를 기약하지 않고, 행동을 반드시 끝맺기를 기약하지 않으며, 오직 의가 있는 곳을 따른다."

12장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그 어린아이의 마음(赤子之心)을 잃지 않는 자이다."

13장

맹자가 말하였다. "산 사람을 봉양하는 것은 큰 일에 해당하기에 부족하고, 오직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라야 큰 일에 해당할 만하다."

14장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도로써 깊이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 그것을 터득하고자 함이다. 스스로 터득하면 거기에 처함이 편안하고, 거기에 처함이 편안하면 그것에 의지함이 깊어지며, 의지함이 깊어지면 좌우에서 취하여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터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15장

맹자가 말하였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풀이하는 것은 장차 돌이켜 요점을 간략히 말하기 위함이다."

16장

맹자가 말하였다. "선(善)으로 남을 복종시키려 하는 자 가운데 남을 복종시킬 수 있는 자는 없다. 선으로 남을 길러 준 뒤에야 천하를 복종시킬 수 있다.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데도 왕 노릇 한 자는 일찍이 없었다."

17장

맹자가 말하였다. "말에 실상이 없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상서롭지 못한 일의 실상은 어진 이를 가리는 자가 그에 해당한다."

18장

서자(徐子)가 말하였다. "중니께서 자주 물을 칭송하여 '물이여! 물이여!' 하셨는데, 물에서 무엇을 취하신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근원이 있는 샘물은 솟아올라 밤낮을 그치지 않고, 웅덩이를 채운 뒤에 나아가 사해(四海)에까지 이른다.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으니,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 만일 근본이 없으면 칠팔월 사이에 빗물이 모여 도랑이 모두 가득 차지만, 그것이 마르는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을 만큼 금방이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정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19장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매우 적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버리고,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 순임금은 만물의 이치에 밝았고 인륜을 살피셨으니, 인의(仁義)에 따라 행하신 것이지 인의를 억지로 행하신 것이 아니다."

20장

맹자가 말하였다. "우왕은 맛 좋은 술을 싫어하고 선한 말을 좋아하였다. 탕왕은 중도를 잡고 어진 이를 등용하되 일정한 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보듯 하였고, 도를 바라보되 아직 보지 못한 듯이 하였다. 무왕은 가까운 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먼 이를 잊지 않았다. 주공은 세 왕(우·탕·문무)을 겸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되, 합치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우러러 생각하기를 밤낮으로 이어서 하고, 다행히 터득하면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21장

맹자가 말하였다. "왕자(王者)의 자취가 사라지자 《시(詩)》가 없어졌고, 《시》가 없어진 뒤에 《춘추(春秋)》가 지어졌다. 진(晉)나라의 《승(乘)》과 초(楚)나라의 《도올(梼杌)》과 노(魯)나라의 《춘추》는 하나이다. 그 다룬 일은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이고, 그 문체는 사관의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 의(義)는 내가 가만히 취하였다'고 하셨다."

22장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의 은택은 다섯 세대면 끊어지고, 소인의 은택도 다섯 세대면 끊어진다. 나는 공자의 직접 제자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사사로이 선하게 배웠다(私淑)."

23장

맹자가 말하였다.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될 때 받으면 청렴이 상하고, 주어도 되고 안 주어도 될 때 주면 은혜가 상하며, 죽어도 되고 안 죽어도 될 때 죽으면 용기가 상한다."

24장

방몽(逢蒙)이 예(羿)에게 활쏘기를 배워 예의 기술을 다 익히고는, 천하에 오직 예만이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이에 예를 죽였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것은 예에게도 잘못이 있다."

공명의(公明儀)가 말하였다. "잘못이 없을 듯합니다만?"

맹자가 말하였다. "잘못이 적다고 할 따름이지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정(鄭)나라가 자탁유자(子濯孺子)를 시켜 위(衛)나라를 침공하게 하자, 위나라는 유공지사(庾公之斯)를 시켜 그를 뒤쫓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기를 '오늘 내가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으니 나는 죽겠구나' 하고는 마부에게 물었다. '나를 쫓아오는 자가 누구냐?' 마부가 말하였다. '유공지사입니다.' 자탁유자가 말하였다. '나는 살았다.' 마부가 말하였다. '유공지사는 위나라의 활 잘 쏘는 자인데, 어른께서 「나는 살았다」고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자탁유자가 말하였다. '유공지사는 윤공지타(尹公之他)에게 활을 배웠고, 윤공지타는 나에게 활을 배웠다. 윤공지타는 단정한 사람이니, 그가 사귄 벗도 반드시 단정할 것이다.' 유공지사가 이르러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어찌하여 활을 잡지 않으십니까?' 자탁유자가 말하였다. '오늘 내가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다.' 유공지사가 말하였다. '소인은 윤공지타에게 활을 배웠고, 윤공지타는 어른께 활을 배웠습니다. 저는 차마 어른의 기술로 도리어 어른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임금의 일이니 제가 감히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드려 그 쇠촉을 빼고 네 대를 쏜 뒤에 돌아갔다."

25장

맹자가 말하였다. "서시(西子)라도 더러운 것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갈 것이다. 비록 추한 사람이라도 재계하고 목욕하면 상제(上帝)에게 제사 지낼 수 있다."

26장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 사람들이 본성(性)을 말하는 것은 이미 그러한 자취(故)에 따를 따름이다. 그 자취라는 것은 순리(利)를 근본으로 삼는다. 지혜로운 자를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천착하기 때문이다. 만일 지혜로운 자가 우왕이 물을 다스리듯 한다면 지혜를 미워할 것이 없다. 우왕이 물을 다스린 것은 일삼는 바가 없이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만일 지혜로운 자도 일삼는 바 없이 한다면 그 지혜도 클 것이다. 하늘은 높고 별들은 멀지만, 진실로 그 자취를 구하면 천 년의 동지(冬至)도 앉아서 알아낼 수 있다."

27장

공행자(公行子)가 아들의 상을 당하자 우사(右師)가 조문하러 갔다. 우사가 문에 들어서자 나아가서 우사와 더불어 말하는 자가 있었고, 우사의 자리로 가서 우사와 더불어 말하는 자가 있었다. 맹자가 우사와 말하지 않으니 우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여러 군자가 모두 나(驩)와 말하는데 맹자만이 홀로 나와 말하지 않으니, 이는 나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다." 맹자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예법에 조정에서는 자리를 건너서 서로 말하지 않고, 계단을 넘어서 서로 읍하지 않는다. 나는 예를 행하고자 하였는데 자오(子敖, 우사)가 나를 소홀히 한다고 여기니,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28장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보통 사람과 다른 까닭은 그 마음을 보존하는 데 있다. 군자는 인(仁)으로 마음을 보존하고 예(禮)로 마음을 보존한다.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예 있는 자는 사람을 공경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남이 항상 그를 사랑하고, 사람을 공경하는 자는 남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자기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돌이켜 본다. '내가 반드시 어질지 못하였고, 반드시 무례하였구나. 이런 일이 어찌 이르렀겠는가.' 스스로 돌이켜 어질었고 스스로 돌이켜 예가 있었는데도 그 함부로 함이 여전하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돌이켜 본다. '내가 반드시 진실하지 못하였구나.' 스스로 돌이켜 진실하였는데도 그 함부로 함이 여전하면, 군자는 말한다. '이 또한 망령된 사람일 뿐이다. 이와 같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짐승에게 또 무엇을 따지겠는가.' 그러므로 군자는 평생의 근심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걱정은 없다. 근심하는 바로 말하면 이런 것이 있다. 순임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은 천하에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하건만 나는 아직도 시골 사람 됨을 면치 못하니, 이것이야말로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순임금처럼 할 따름이다. 군자가 걱정하는 바는 없다. 인이 아니면 하지 않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니, 설령 하루아침의 걱정이 있더라도 군자는 그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29장

우왕과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을 만나 세 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공자가 어질다 하였다. 안자(顏子)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로 지냈으니, 남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건만 안자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공자가 어질다 하였다. 맹자가 말하였다. "우왕·후직과 안회는 도가 같다. 우왕은 천하에 물에 빠진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빠뜨린 듯이 생각하였고, 후직은 천하에 굶주린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굶주리게 한 듯이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그토록 급하게 한 것이다. 우왕·후직과 안자는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지금 한 방에 있는 사람이 싸우면 이를 말리되, 비록 머리를 풀어헤치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리더라도 괜찮다. 그러나 이웃 마을에 싸우는 자가 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면 미혹된 일이니, 비록 문을 닫고 있어도 괜찮다."

30장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광장(匡章)은 온 나라가 모두 불효자라 일컫는데, 선생님께서는 그와 더불어 교유하시고 또 예우하시니, 감히 묻건대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세속에서 이른바 불효라는 것이 다섯 가지다. 사지를 게을리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 첫째 불효요, 장기·바둑을 두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 둘째 불효요,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만 사사로이 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 셋째 불효요, 귀와 눈의 욕심을 따라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 넷째 불효요, 용맹을 좋아하고 사납게 다투어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다섯째 불효이다. 광장이 이 가운데 하나라도 있는가? 광장은 자식이 아버지에게 선(善)을 행하라고 책하다가 서로 뜻이 맞지 않은 것이다. 선을 행하라고 책하는 것은 벗 사이의 도리이니, 부자간에 선을 책하는 것은 은혜를 해치는 큰 일이다. 광장이 어찌 부부와 모자의 가족을 두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어 가까이할 수 없었기에 아내를 내보내고 자식을 물리쳐 종신토록 봉양받지 않은 것이다. 그는 마음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것이야말로 죄가 크다고 여긴 것이니, 이것이 광장일 뿐이다."

31장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 도적이 침입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으십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들이지 말고 그 땔나무를 상하게 하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말하였다. "내 담장과 집을 수리하라. 내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니 증자가 돌아왔다. 좌우 사람들이 말하였다. "무성 사람들이 선생을 이처럼 충성스럽고 공경히 대접하였는데, 도적이 이르자 먼저 떠나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돌아오시니 옳지 않은 듯합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옛날 우리 심유씨(沈猶氏)에게 부추(負芻)의 화가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던 자 칠십 명이 화에 함께 휘말린 자가 없었다."

자사(子思)가 위(衛)나라에 살 때 제(齊)나라 도적이 침입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으십니까?" 자사가 말하였다. "만일 내가 떠나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지키겠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증자와 자사는 도가 같다. 증자는 스승이요 부형의 처지였고, 자사는 신하요 미천한 처지였다. 증자와 자사는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32장

저자(儲子)가 말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선생을 엿보게 하였는데, 과연 남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남과 다르겠는가? 요임금과 순임금도 보통 사람과 같았을 뿐이다."

33장

제나라 사람으로 한 아내와 한 첩을 두고 한집에 사는 자가 있었다. 그 남편(良人)이 나가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 돌아왔다. 그 아내가 함께 먹고 마신 자를 물으니 모두 부귀한 사람들이었다. 그 아내가 첩에게 말하였다. "남편이 나가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은 뒤에 돌아오는데, 함께 먹고 마신 자를 물으면 모두 부귀한 사람이라 한다. 그런데 일찍이 이름난 자가 찾아온 적이 없으니, 내 장차 남편이 가는 곳을 엿보리라." 일찍 일어나 남편이 가는 곳을 몰래 뒤따랐다. 온 도성을 두루 다녔으나 함께 서서 이야기하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의 무덤 사이에서 제사 지내는 자에게 가서 그 남은 음식을 빌고, 부족하면 또 돌아보고 다른 데로 갔다. 이것이 그가 실컷 먹는 방법이었다. 그 아내가 돌아와 첩에게 고하였다. "남편이란 우러러보며 평생을 함께할 사람인데, 이제 이 모양이로구나." 그러고는 첩과 함께 남편을 헐뜯으며 뜰 가운데서 서로 울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를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밖에서 들어와 그 아내와 첩에게 교만하게 굴었다. 군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부귀와 영달을 구하는 방식 가운데 그 아내와 첩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울지 않을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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