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04 공손추하(公孫丑下)
천시(天時)·지리(地利)보다 인화(人和)가 으뜸이라는 유명한 장으로 시작한다. 임금이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의 자세, 받음과 받지 않음의 의리,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출처(出處)의 도리, 제나라를 떠나는 맹자의 심경 등 선비의 처신을 두루 다룬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
得道者多助,失道者寡助。
(도를 얻은 자는 돕는 이가 많고, 도를 잃은 자는 돕는 이가 적다.)
五百年必有王者興,其間必有名世者。
(오백 년에 반드시 왕자가 일어나며,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이름난 자가 있다.)
번역
1장
맹자가 말하였다.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삼 리의 성과 칠 리의 외곽을 에워싸고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함이 있다. 무릇 에워싸고 공격하면 반드시 천시를 얻은 때가 있건마는,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천시가 지리만 못하기 때문이다. 성이 높지 않은 것이 아니고 못이 깊지 않은 것이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고 날카롭지 않은 것이 아니고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지리가 인화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을 한정함은 국경의 경계로써 하지 않고, 나라를 굳게 함은 산과 골짜기의 험함으로써 하지 않으며, 천하에 위엄을 떨침은 병기와 갑옷의 날카로움으로써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도를 얻은 자는 돕는 이가 많고 도를 잃은 자는 돕는 이가 적다. 돕는 이가 적음이 지극하면 친척도 배반하고, 돕는 이가 많음이 지극하면 천하가 순종한다. 천하가 순종하는 바로써 친척이 배반하는 바를 공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싸우지 않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2장
맹자가 장차 왕을 조회하려 하였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과인이 나아가 뵈려 하였으나 감기가 있어 바람을 쐴 수 없습니다. 아침에 조회를 볼 것이니, 과인이 뵐 수 있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불행히 병이 있어 조정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튿날 동곽씨(東郭氏)에게 조문하러 나갔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어제는 병이라 사양하시고 오늘 조문하시니, 혹 안 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어제는 병들었고 오늘은 나았는데, 어찌 조문하지 못하겠는가?"
왕이 사람을 보내어 병을 묻고 의원이 왔다. 맹중자(孟仲子)가 대답하였다. "어제는 왕명이 있었으나 채신지우(采薪之憂·병)가 있어 조정에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병이 조금 나아 조정으로 달려가셨으니, 제가 이르셨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을 시켜 길목에서 맞으며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지 마시고 조정으로 나아가시기를 청합니다"라 하게 하였다.
부득이 경추씨(景丑氏)의 집으로 가서 묵었다.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으로는 부자(父子)요 밖으로는 군신(君臣)이니, 사람의 큰 윤리입니다. 부자는 은혜를 주로 하고 군신은 공경을 주로 합니다. 저는 왕께서 선생을 공경하시는 것은 보았으나, 선생께서 왕을 공경하시는 까닭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아! 이 무슨 말인가! 제나라 사람 가운데 인의(仁義)로 왕과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은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게 여겨서이겠는가? 그 마음에 '이 사람과 어찌 인의를 말할 만하랴' 할 뿐이니, 그렇다면 불경(不敬)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왕 앞에 펴지 않으니,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 가운데 나만큼 왕을 공경하는 자가 없다."
경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이를 이름이 아닙니다. 《예(禮)》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부르시면 느릿하게 대답하지 않고, 임금이 명하여 부르시면 멍에 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본디 조회하려 하셨는데 왕명을 듣고는 끝내 가지 않으셨으니, 저 예와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이를 이름이겠는가?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晉)·초(楚)의 부유함은 미칠 수 없으나, 저들이 그 부유함으로 하면 나는 나의 인(仁)으로 하고, 저들이 그 벼슬로 하면 나는 나의 의(義)로 하니, 내 무엇이 부족하랴' 하셨다. 어찌 의롭지 못한데 증자께서 말씀하셨겠는가? 이 또한 한 가지 도리이다. 천하에 두루 높이는 것이 셋이니, 벼슬이 하나요 나이가 하나요 덕이 하나이다. 조정에서는 벼슬만 한 것이 없고, 마을에서는 나이만 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름에는 덕만 한 것이 없다. 어찌 그 하나를 가지고 그 둘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장차 크게 할 일이 있는 임금은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어, 도모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나아간다. 그 덕을 높이고 도를 즐김이 이와 같지 않으면 함께 큰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탕이 이윤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므로 수고롭지 않고 왕 노릇 하였고, 환공(桓公)이 관중에게 배운 뒤에 신하로 삼았으므로 수고롭지 않고 패자가 되었다. 지금 천하가 땅이 비슷하고 덕이 비슷하여 서로 뛰어남이 없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자기가 가르치는 자를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는 자를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탕이 이윤에게, 환공이 관중에게는 감히 부르지 못하였다. 관중도 오히려 부르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관중 노릇을 하지 않으려는 자이겠는가?"
3장
진진(陳臻)이 물었다. "지난날 제나라에서는 왕이 좋은 금 백 일(鎰)을 보내었으나 받지 않으시고, 송(宋)나라에서는 칠십 일을 보내자 받으셨으며, 설(薛)나라에서는 오십 일을 보내자 받으셨습니다. 지난날 받지 않으심이 옳다면 오늘 받으심이 그르고, 오늘 받으심이 옳다면 지난날 받지 않으심이 그릅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이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실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모두 옳다. 송나라에 있을 때 나는 장차 멀리 떠나려 하였으니, 떠나는 자에게는 반드시 노자(贐)를 주는 법이라 '노자로 드립니다' 하기에 내 어찌 받지 않겠는가? 설나라에 있을 때 나는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경계함을 들었으므로 호위를 위하여 드립니다' 하기에 내 어찌 받지 않겠는가? 제나라에서는 쓸 곳이 없었다. 쓸 곳이 없는데 보내는 것은 재물로 매수하는 것이니, 어찌 군자로서 재물에 매수될 수 있겠는가?"
4장
맹자가 평륙(平陸)에 가서 그 대부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창을 든 군사가 하루에 세 번 대오를 이탈하면 버리겠습니까, 버리지 않겠습니까?"
대부가 말하였다. "세 번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대오를 이탈한 것도 많습니다. 흉년과 기근의 해에 그대의 백성 가운데 늙고 약한 자가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고 장정으로서 흩어져 사방으로 간 자가 거의 수천 명입니다."
대부가 말하였다. "이는 거심(距心·대부의 이름)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남의 소와 양을 받아 길러주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것을 위하여 목장과 꼴을 구할 것입니다.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돌려주겠습니까, 아니면 또한 서서 그것이 죽는 것을 보겠습니까?"
대부가 말하였다. "이는 거심의 죄입니다."
다른 날 왕을 뵙고 말하였다. "왕의 도읍을 다스리는 자 가운데 신은 다섯 사람을 압니다. 그 죄를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孔距心)뿐이니, 왕을 위하여 이를 아룁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야기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이는 과인의 죄입니다."
5장
맹자가 지와(蚳蛙)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가 영구(靈丘)의 읍재를 사양하고 옥관(士師)을 청한 것은 그럴듯하니, 말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 말할 수 없었습니까?"
지와가 왕에게 간하였으나 쓰이지 않자, 신하 노릇을 그만두고 떠났다.
제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지와를 위한 것은 좋으나, 자기를 위한 것은 나는 모르겠다."
공도자(公都子)가 이를 아뢰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내 들으니, 관직을 맡은 자는 그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떠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떠난다 하였다. 나는 맡은 관직도 없고 말할 책임도 없으니, 나의 나아가고 물러남이 어찌 너그럽고 여유롭지 않겠는가?"
6장
맹자가 제나라에서 경(卿)이 되어 등(滕)나라에 조문하러 나갈 때, 왕이 합(蓋)의 대부 왕환(王驩)을 보좌로 삼게 하였다. 왕환이 아침저녁으로 뵈었으나, 제·등의 길을 오가는 동안 일찍이 그와 더불어 행사(行事)를 말하지 않았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제나라 경의 지위가 작지 않고 제·등의 길이 가깝지 않은데, 오가는 동안 일찍이 더불어 행사를 말하지 않으심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이미 누가 그것을 다스리고 있으니, 내 무엇을 말하겠는가?"
7장
맹자가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가서 장사를 지내고 제나라로 돌아오다가 영(嬴)에 머물렀다. 충우(充虞)가 청하여 말하였다. "지난날 제가 불초함을 모르시고 제게 관(棺) 짜는 일을 맡기셨는데, 일이 급하여 제가 감히 청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가만히 여쭙고자 하니, 나무가 너무 좋았던 듯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에는 관곽(棺槨)에 정해진 치수가 없었으나, 중고(中古)에 관은 일곱 치, 곽은 그에 맞게 하여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같았다). 다만 보기 좋게 하려 함이 아니라, 그런 뒤에야 사람의 마음을 다하기 때문이다. (예법상) 할 수 없으면 기쁠 수 없고, 재물이 없으면 기쁠 수 없다. (예법상) 할 수 있고 재물이 있으면 옛사람이 모두 이를 썼으니, 내 어찌 홀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또한 죽은 이를 위하여 흙이 살갗에 닿지 않게 한다면, 사람의 마음에 유독 흡족하지 않겠는가? 내 들으니 군자는 천하의 것으로 그 어버이에게 인색하게 하지 않는다 하였다."
8장
심동(沈同)이 사사로이 물었다. "연(燕)나라를 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칠 수 있다. 자쾌(子噲)도 연나라를 남에게 줄 수 없고, 자지(子之)도 자쾌에게서 연나라를 받을 수 없다. 여기에 벼슬하는 자가 있어 그대가 그를 좋아하여, 왕께 아뢰지 않고 사사로이 그대의 녹과 벼슬을 주며, 그 선비도 또한 왕명 없이 사사로이 그대에게서 받는다면 옳겠는가?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쳤다. 어떤 이가 물었다. "제나라에 연나라를 치라고 권하셨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심동이 '연나라를 칠 수 있습니까?' 하기에 내 '칠 수 있다'고 대답하였더니, 저들이 그렇게 여겨 친 것이다. 저들이 만일 '누가 칠 수 있습니까?' 하였다면, 나는 '천리(天吏)면 칠 수 있다'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지금 사람을 죽인 자가 있어 어떤 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하면 나는 '죽일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요, 저들이 만일 '누가 죽일 수 있습니까?' 하면 나는 '옥관(士師)이면 죽일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연나라(같은 무도한 나라)로 연나라(같은 무도한 나라)를 치는 것이니, 내 어찌 권하였겠는가?"
9장
연나라 사람이 배반하자 왕이 말하였다. "내 맹자에게 몹시 부끄럽다."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왕께서 스스로 주공(周公)과 더불어 누가 더 인하고 지혜롭다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 이 무슨 말인가!"
진가가 말하였다. "주공이 관숙(管叔)을 시켜 은(殷)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관숙이 은으로 배반하였습니다. 알고도 시켰다면 인하지 못한 것이요, 모르고 시켰다면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인과 지혜는 주공도 다하지 못하셨거늘, 하물며 왕이겠습니까? 제가 뵙고 풀어드리기를 청합니다."
맹자를 뵙고 물었다. "주공은 어떤 사람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옛 성인이다."
진가가 말하였다. "관숙을 시켜 은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관숙이 은으로 배반하였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진가가 말하였다. "주공이 그가 장차 배반할 줄 알고 시켰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알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성인도 허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주공은 아우요 관숙은 형이니, 주공의 허물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또 옛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쳤는데, 지금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대로 따른다. 옛 군자는 그 허물이 일식·월식 같아서 백성이 모두 보고, 고침에 미쳐서는 백성이 모두 우러러보았다. 지금 군자는 어찌 다만 따르기만 하랴? 또 따라서 변명까지 한다."
10장
맹자가 신하 노릇을 그만두고 돌아가려 하였다.
왕이 나아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지난날 뵙기를 원하였으나 얻지 못하다가, 한 조정에서 모실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이후로 계속하여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감히 청하지 못할 뿐, 본디 바라는 바입니다."
다른 날 왕이 시자(時子)에게 말하였다. "내 나라 가운데에 맹자에게 집을 주고 만 종(鐘)으로 제자를 길러, 여러 대부와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본받을 바가 있게 하고자 한다. 그대가 어찌 나를 위하여 이를 말해 주지 않는가?"
시자가 진자(陳子)를 통하여 맹자에게 아뢰니,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러하다. 무릇 시자가 어찌 그것이 안 되는 줄 알겠는가? 만일 내가 부유하고자 한다면, 십만(종)을 사양하고 만(종)을 받음이 부유하고자 함이겠는가? 계손(季孫)이 말하기를 '이상하구나, 자숙의(子叔疑)여! 자기로 하여금 정치를 하게 하다가 쓰이지 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또 그 자제를 경(卿)으로 삼게 하였다. 사람이 또한 누가 부귀를 원하지 않으랴마는, 유독 부귀 가운데 사사로이 농단(龍斷)하는 자가 있다' 하였다. 옛날에 시장을 운영함은 가진 것으로 없는 것을 바꾸는 것이어서, 유사(有司)가 이를 다스릴 뿐이었다. 천한 사내가 있어 반드시 농단(우뚝한 언덕)을 찾아 올라가 좌우로 둘러보아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니, 사람들이 모두 천히 여겼으므로 따라서 세금을 매겼다. 상인에게 세금을 매김이 이 천한 사내로부터 비롯되었다."
11장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 주(晝)에서 묵었다. 왕을 위하여 가는 길을 멈추게 하려는 자가 있어 앉아서 말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안석에 기대어 누웠다.
객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제자가 하룻밤 재계하고 감히 말씀드렸는데, 선생께서는 누워 듣지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뵙지 않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앉으라. 내 그대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옛날 노목공(魯繆公)은 자사(子思) 곁에 (성의를 전할)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케 하지 못하였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 곁에 (자기를 지지할) 사람이 없으면 그 몸을 편안케 하지 못하였다. 그대는 어른(나)을 위하여 염려하면서도 자사를 (대우하던 정성에) 미치지 못한다. 그대가 어른을 끊는 것인가, 어른이 그대를 끊는 것인가?"
12장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니,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왕이 탕·무(湯武) 같은 임금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는 밝지 못한 것이요, 그 안 됨을 알고도 왔다면 이는 은택(벼슬)을 구한 것이다. 천 리를 와서 왕을 뵙고 뜻이 맞지 않아 떠나면서, 사흘을 묵은 뒤에야 주(晝)를 나갔으니 어찌 이리 더디 머무는가? 나는 이것이 기쁘지 않다."
고자(高子)가 이를 아뢰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무릇 윤사가 어찌 나를 알겠는가? 천 리를 와서 왕을 뵌 것은 내가 바라던 바요, 뜻이 맞지 않아 떠난 것이 어찌 내가 바라던 바이겠는가? 나는 부득이함이었다. 내가 사흘을 묵고 주를 나간 것도 내 마음에는 오히려 빠르다고 여겼으니, 왕께서 행여 마음을 고치시기를 바란 것이다. 왕께서 만일 고치셨다면 반드시 나를 돌아오게 하셨을 것이다. 무릇 주를 나가도 왕이 나를 좇지 않으시기에, 내 그런 뒤에야 호연(浩然)히 돌아갈 뜻을 가진 것이다. 내 비록 그러하나 어찌 왕을 버리겠는가? 왕은 오히려 족히 선을 행할 만하니, 왕께서 만일 나를 쓰셨다면 어찌 다만 제나라 백성만 편안하겠는가? 천하의 백성이 모두 편안할 것이다. 왕께서 행여 고치시기를 나는 날마다 바란다. 내 어찌 이 소장부(小丈夫)와 같겠는가? 제 임금에게 간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성내어 발끈하는 빛을 그 얼굴에 드러내고, 떠나면 하루의 힘을 다한 뒤에야 묵겠는가?"
윤사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소인이로다."
13장
맹자가 제나라를 떠날 때, 충우(充虞)가 길에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시는 빛이 있으신 듯합니다. 지난날 제가 선생님께 듣기로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때는 그때요, 지금은 지금이다. 오백 년에 반드시 왕자(王者)가 일어나며,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이름난 자가 있다. 주(周)나라 이래로 칠백여 년이 지났으니, 그 햇수로 보면 이미 지났고 그때로 헤아려 보면 (왕자가 일어날) 때이다. 무릇 하늘이 아직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는 것이니, 만일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고자 한다면 지금 세상에 나를 버리고 누가 있겠는가? 내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14장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 휴(休)에 머물렀다. 공손추가 물었다. "벼슬하면서 녹을 받지 않음이 옛 도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숭(崇)에서 내가 왕을 뵐 수 있었는데, 물러나면서 떠날 뜻이 있어 (마음을) 바꾸고 싶지 않았으므로 받지 않은 것이다. 이어 군사를 일으키라는 명이 있어 떠나기를 청할 수 없었다. 제나라에 오래 머문 것은 내 뜻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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