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02 양혜왕하(梁惠王下)

맹자(孟子) · 전국 맹가 · 번역·감수 허유

제선왕·추목공·등문공 등과 나눈 대화를 담는다.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여민동락(與民同樂),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외교의 도(交鄰國), 용맹의 크고 작음, 백성을 위한 정벌의 정당성, 임금의 책임을 묻는 군신의 도리가 펼쳐진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今王與百姓同樂,則王矣。

(지금 왕께서 백성과 더불어 즐기시면 왕 노릇 하실 것이다.)

樂民之樂者,民亦樂其樂;憂民之憂者,民亦憂其憂。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도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도 그 근심을 근심한다.)

聞誅一夫紂矣,未聞弒君也。

(일부인 주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번역

1장

장포(莊暴)가 맹자를 만나 말하였다. "제가 왕을 뵈었더니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시기에, 제가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어 물었다. "음악을 좋아함은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음악을 몹시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다른 날 왕을 뵙고 말하였다. "왕께서 일찍이 장포에게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왕이 낯빛이 변하며 말하였다. "과인은 선왕(先王)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음악을 몹시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 음악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남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남과 더불어 하는 것만 못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적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많은 사람과 하는 것만 못합니다."

"신이 왕을 위하여 음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이 왕의 종과 북 소리, 피리 소리를 듣고 모두 머리를 싸매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서로 일러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시는데, 어찌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흩어졌도다' 하며, 지금 왕께서 여기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이 왕의 수레와 말 소리를 듣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머리를 싸매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서로 일러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사냥을 좋아하시는데, 어찌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흩어졌도다' 한다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시는데 백성이 왕의 종과 북 소리, 피리 소리를 듣고 모두 흔쾌히 기쁜 빛으로 서로 일러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거의 병이 없으신가 보다, 어떻게 음악을 연주하실 수 있는가?' 하며, 지금 왕께서 여기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이 왕의 수레와 말 소리를 듣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흔쾌히 기쁜 빛으로 서로 일러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거의 병이 없으신가 보다, 어떻게 사냥하실 수 있는가?' 한다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즐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과 더불어 즐기시면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

2장

제선왕이 물었다. "문왕의 동산(囿)이 사방 칠십 리였다 하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전하는 기록에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렇게 컸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은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 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니,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 리였으나 꼴 베고 나무하는 자가 그곳에 가고 꿩 잡고 토끼 잡는 자가 그곳에 가서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작다고 여김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신이 처음 국경에 이르러 나라의 큰 금령을 물은 뒤에야 감히 들어왔습니다. 신이 들으니 교외 관문 안에 사방 사십 리의 동산이 있어 그 사슴을 죽이는 자를 사람 죽인 죄로 다스린다 하니, 이는 사방 사십 리로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든 것입니다. 백성이 크다고 여김이 또한 마땅하지 않습니까?"

3장

제선왕이 물었다. "이웃 나라와 사귐에 도가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그러므로 탕(湯)이 갈(葛)을 섬기고 문왕이 곤이(昆夷)를 섬겼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그러므로 태왕(太王)이 훈육(獯鬻)을 섬기고 구천(勾踐)이 오(吳)를 섬겼습니다.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을 즐기는 자요,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하늘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전합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전한다'고 하였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위대하도다, 그 말씀이여! 그러나 과인에게는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용맹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작은 용맹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칼을 어루만지고 부릅뜨며 '저자가 어찌 감히 나를 당하랴' 하는 것은 필부의 용맹이니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를 크게 하십시오. 《시경》에 이르기를 '왕께서 불끈 노하시어 이에 그 군대를 정돈하여, 거(莒)로 가는 무리를 막고, 주(周)의 복을 두텁게 하여, 천하에 보답하셨다'고 하였으니, 이는 문왕의 용맹입니다. 문왕이 한번 노하여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셨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 백성을 내리시고 임금을 세우고 스승을 세우심은, 오직 상제(上帝)를 도와 사방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죄가 있든 없든 오직 내가 있으니, 천하에 누가 감히 그 뜻을 넘어서랴'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천하에 횡포를 부리거늘 무왕(武王)이 이를 부끄러워하셨으니, 이는 무왕의 용맹입니다. 무왕도 한번 노하여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셨습니다. 지금 왕께서도 한번 노하여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신다면, 백성은 오직 왕께서 용맹을 좋아하지 않으실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4장

제선왕이 설궁(雪宮)에서 맹자를 만났다. 왕이 말하였다. "어진 사람에게도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사람이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얻지 못하였다고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요,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 백성과 더불어 즐기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도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도 그 근심을 근심합니다. 천하로써 즐거워하고 천하로써 근심하는데도 왕 노릇 하지 못한 자는 아직 없었습니다. 옛날 제경공(齊景公)이 안자(晏子)에게 묻기를 '나는 전부(轉附)와 조무(朝舞)를 구경하고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가서 낭야(琅邪)에 이르고자 하니, 내 어떻게 닦아야 선왕의 유람에 견줄 수 있겠는가?' 하니, 안자가 대답하였습니다. '훌륭한 물음입니다.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니, 순수란 지키는 곳을 순행하는 것입니다.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하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니, 술직이란 맡은 바를 아뢰는 것입니다.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봄에는 밭갈이를 살펴 부족한 것을 보태주고, 가을에는 수확을 살펴 모자란 것을 도와줍니다. 하(夏)나라 속담에 「우리 왕께서 유람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어떻게 쉬며, 우리 왕께서 즐기지 않으시면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받으랴. 한 번 유람하고 한 번 즐김이 제후의 법도가 된다」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군대가 행군하면 양식을 거두어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수고로운 자가 쉬지 못하며, 흘겨보며 서로 헐뜯어 백성이 이에 원망을 품습니다. 천명을 거스르고 백성을 학대하며 먹고 마심을 물 쓰듯 하고, 유련(流連)하고 황망(荒亡)하여 제후의 근심이 됩니다. 물길을 따라 내려가 돌아옴을 잊는 것을 유(流)라 하고, 물길을 따라 올라가 돌아옴을 잊는 것을 연(連)이라 하며, 짐승을 좇아 싫증냄이 없음을 황(荒)이라 하고, 술을 즐겨 싫증냄이 없음을 망(亡)이라 합니다. 선왕은 유련의 즐거움과 황망의 행실이 없었습니다. 오직 임금께서 행하실 바입니다.' 경공이 기뻐하여 나라에 크게 경계하고 교외로 나가 거처하였습니다. 이에 비로소 창고를 열어 부족한 것을 보태고, 태사(太師)를 불러 '나를 위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기뻐하는 음악을 지으라' 하였으니, 치소(徵招)와 각소(角招)가 그것입니다. 그 시에 이르기를 '임금을 저지함이 무슨 허물이랴' 하였으니, 임금을 저지함은 임금을 사랑함입니다."

5장

제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명당(明堂)을 헐라 하니, 헐어야 합니까, 그만두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명당이란 왕자(王者)의 당입니다. 왕께서 왕정(王政)을 행하고자 하시면 헐지 마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왕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문왕이 기(岐)를 다스릴 때 밭 가는 자에게 9분의 1을 세금으로 받고, 벼슬한 자에게 대대로 녹을 주며, 관문과 시장은 살피되 세금을 받지 않고, 못과 어량(魚梁)을 금하지 않으며, 죄인의 처자에게 죄를 미치지 않았습니다. 늙어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홀아비)이라 하고, 늙어 남편이 없는 것을 과(寡·과부)라 하며, 늙어 자식이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고(孤)라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 하소연할 데가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은 정치를 펴고 인을 베풂에 반드시 이 네 부류를 먼저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부유한 자는 괜찮으나, 이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자가 가엾도다' 하였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그 말씀이여!"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그것을 훌륭하다 여기시면 어찌 행하지 않으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과인에게는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공류(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곡식을 노적가리에 쌓고 창고에 쌓으며, 마른 양식을 싸서 전대와 자루에 넣고, 백성을 편안케 하여 나라를 빛내고자 하였네. 활과 화살을 펼치고 방패와 창과 도끼를 들고서,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났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머무는 자에게는 쌓아둔 곡식이 있고 떠나는 자에게는 싼 양식이 있은 뒤에야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왕께서 재물을 좋아하시되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신다면, 왕 노릇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과인에게는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여색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태왕(大王)이 여색을 좋아하여 그 비(妃)를 사랑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께서 아침에 말을 달려,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岐山) 아래에 이르렀네. 이에 강녀(姜女)와 더불어 와서 함께 집터를 보았네'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안에 원망하는 여인이 없고 밖에 홀아비가 없었으니, 왕께서 여색을 좋아하시되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신다면, 왕 노릇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6장

맹자가 제선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왕의 신하 가운데 그 처자를 벗에게 맡기고 초나라로 놀러 간 자가 있는데, 돌아와 보니 그 처자가 얼고 굶주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그를 버립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옥관(士師)이 관원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그를 그만두게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온 나라 안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딴말을 하였다.

7장

맹자가 제선왕을 만나 말하였다. "이른바 오래된 나라란 큰 나무가 있음을 이름이 아니라 대대로 섬긴 신하가 있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왕께는 가까운 신하가 없으니, 지난날 등용한 자가 오늘 도망간 것도 알지 못하십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 어떻게 그 재주 없음을 알아 버리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이 어진 이를 등용함은 부득이한 것처럼 하여, 장차 낮은 자를 높은 자보다 넘어서게 하고 먼 자를 가까운 자보다 넘어서게 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좌우가 모두 어질다 하여도 안 되고, 여러 대부가 모두 어질다 하여도 안 되며,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어질다 한 뒤에 살펴서 어짊을 본 뒤에 등용하십시오. 좌우가 모두 안 된다 하여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가 모두 안 된다 하여도 듣지 말며,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안 된다 한 뒤에 살펴서 안 됨을 본 뒤에 버리십시오. 좌우가 모두 죽일 만하다 하여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가 모두 죽일 만하다 하여도 듣지 말며, 온 나라 사람이 모두 죽일 만하다 한 뒤에 살펴서 죽일 만함을 본 뒤에 죽이십시오. 그러므로 온 나라 사람이 죽인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8장

제선왕이 물었다. "탕(湯)이 걸(桀)을 내쫓고 무왕(武王)이 주(紂)를 친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전하는 기록에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함이 옳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한낱 사내)라 합니다. 일부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9장

맹자가 제선왕을 만나 말하였다. "큰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공사(工師)로 하여금 큰 나무를 구하게 합니다. 공사가 큰 나무를 얻으면 왕께서 기뻐하여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시고, 목수가 깎아서 작게 하면 왕께서 노하여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여기십니다. 무릇 사람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장성하여 행하고자 함인데, 왕께서 '잠시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여기에 다듬지 않은 옥(璞玉)이 있다면, 비록 만 일(鎰)의 값이 나가더라도 반드시 옥 다루는 사람으로 하여금 쪼고 다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다스림에 이르러 '잠시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옥 다루는 사람에게 옥 쪼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10장

제나라 사람이 연(燕)나라를 쳐서 이겼다. 선왕이 물었다. "어떤 이는 과인에게 취하지 말라 하고 어떤 이는 취하라 합니다. 만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로 만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를 쳐서 오십 일 만에 함락시켰으니, 사람의 힘으로는 여기에 이르지 못합니다. 취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이니, 취하면 어떻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취하십시오. 옛사람 가운데 이를 행한 자가 있으니 무왕이 그러합니다.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취하지 마십시오. 옛사람 가운데 이를 행한 자가 있으니 문왕이 그러합니다. 만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로 만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를 치는데 대그릇 밥과 병에 든 음료로 왕의 군대를 맞이함은 어찌 다른 까닭이겠습니까? 물과 불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물이 더욱 깊어지고 불이 더욱 뜨거워지면, 또한 다른 데로 옮겨갈 뿐입니다."

11장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쳐서 취하였다. 제후들이 장차 연나라를 구원하려고 모의하였다. 선왕이 말하였다. "제후 가운데 과인을 치려고 모의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신이 들으니 칠십 리로 천하에 정치를 행한 자가 있으니 탕이 그러합니다. 천 리를 가지고도 남을 두려워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탕이 한번 정벌하되 갈(葛)에서 시작하였다' 하니, 천하가 그를 믿어, 동쪽을 향해 정벌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해 정벌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어찌 우리를 뒤로 하는가?' 하였습니다. 백성이 그를 바라기를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 하여, 시장에 가는 자가 멈추지 않고 밭 가는 자가 변치 않았습니다. 그 임금을 베고 그 백성을 위로함이 때맞춰 비가 내리는 것 같아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을 기다리니, 임금께서 오시면 우리가 살아나리라' 하였습니다.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을 학대하거늘 왕께서 가서 정벌하시니, 백성이 장차 자기를 물과 불 가운데서 건져줄 것이라 여겨 대그릇 밥과 병에 든 음료로 왕의 군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부형을 죽이고 그 자제를 결박하며 그 종묘를 헐고 그 보물을 옮긴다면, 어찌 옳겠습니까? 천하가 본디 제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는데, 이제 또 땅을 배로 늘리고도 어진 정치를 행하지 않으면, 이는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속히 명을 내리시어 늙은이와 어린이를 돌려보내고 보물을 옮기는 것을 멈추며, 연나라 백성과 의논하여 임금을 세운 뒤에 떠나신다면, 오히려 화를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12장

추(鄒)나라와 노(魯)나라가 다투었다. 목공(穆公)이 물었다. "우리 관리로서 죽은 자가 서른세 명인데 백성은 죽은 자가 없습니다. 그들을 베자니 다 벨 수 없고, 베지 않자니 그 윗사람의 죽음을 흘겨보며 구하지 않은 것을 미워하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흉년과 기근의 해에 임금의 백성으로서 늙고 약한 자가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고 장정으로서 흩어져 사방으로 간 자가 거의 수천 명입니다. 그런데 임금의 창고는 가득 차고 곳간은 충실한데도 관리가 이를 아뢰지 않았으니, 이는 윗사람이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간 것이 너에게로 돌아온다' 하셨습니다. 백성이 이제야 되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들을 허물하지 마십시오.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행하시면 이 백성이 그 윗사람을 친애하여 그 어른을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13장

등문공(滕文公)이 물었다. "등(滕)은 작은 나라로 제(齊)와 초(楚)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제를 섬겨야 합니까, 초를 섬겨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이 계책은 내가 미칠 바가 아닙니다. 그래도 말하라 하시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못을 파고 이 성을 쌓아 백성과 더불어 지켜, 목숨을 바치더라도 백성이 떠나지 않게 한다면, 이는 해볼 만합니다."

14장

등문공이 물었다. "제나라 사람이 장차 설(薛)에 성을 쌓으려 하니 내 몹시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태왕이 빈(邠)에 거할 때 적인(狄人)이 침범하자, 그곳을 떠나 기산 아래로 가서 거하였습니다. 가려서 취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함이었습니다. 진실로 선(善)을 행하면 후세 자손 가운데 반드시 왕자가 있을 것입니다. 군자가 기업(基業)을 창건하고 계통을 드리움은 이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공으로 말하면 하늘에 달린 것이니, 임금께서 저들을 어찌하겠습니까? 힘써 선을 행할 뿐입니다."

15장

등문공이 물었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큰 나라를 섬겨도 화를 면치 못하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 태왕이 빈에 거할 때 적인이 침범하였습니다. 가죽과 비단으로 섬겨도 면치 못하고, 개와 말로 섬겨도 면치 못하며, 구슬과 옥으로 섬겨도 면치 못하였습니다. 이에 노인들을 모아 일러 말하기를 '적인이 바라는 것은 우리 땅이다. 내 들으니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것(땅)으로써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음을 근심하랴? 나는 장차 이곳을 떠나겠다' 하였습니다. 빈을 떠나 양산(梁山)을 넘어 기산 아래에 도읍하여 거하였습니다. 빈 사람들이 '어진 사람이니 잃을 수 없다' 하여 그를 따르는 자가 시장에 모여들 듯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대대로 지켜온 땅이니 자기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떠나지 말라' 하였습니다. 임금께서는 이 두 가지 가운데 가려서 하십시오."

16장

노평공(魯平公)이 장차 외출하려는데, 총애하는 신하 장창(臧倉)이란 자가 청하였다. "지난날 임금께서 외출하시면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가실 곳을 명하셨는데, 지금 수레가 이미 멍에를 매었으나 유사가 가실 곳을 알지 못하니 감히 청합니다."

공이 말하였다. "장차 맹자를 만나려 한다."

장창이 말하였다. "어찌 임금께서 몸을 가벼이 하여 필부에게 먼저 가십니까? 그가 어질다 여기시는 것입니까? 예의는 어진 이에게서 나오는데, 맹자의 나중 상(喪)이 앞의 상보다 지나쳤습니다. 임금께서는 만나지 마십시오."

공이 말하였다. "그러마."

악정자(樂正子)가 들어와 뵙고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 맹가(孟軻)를 만나지 않으십니까?"

공이 말하였다. "어떤 이가 과인에게 '맹자의 나중 상이 앞의 상보다 지나쳤다'고 하기에, 가서 만나지 않은 것이다."

악정자가 말하였다. "어찌 임금께서 이르신 지나침이란 것입니까? 앞에는 선비의 예로, 뒤에는 대부의 예로 하였으며, 앞에는 세 솥으로, 뒤에는 다섯 솥으로 한 것입니까?"

공이 말하였다. "아니다. 관곽(棺槨)과 수의의 아름다움을 이름이다."

악정자가 말하였다. "이는 이른바 지나침이 아니라 빈부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악정자가 맹자를 만나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아뢰어 임금께서 와서 뵈려 하셨는데, 총신 가운데 장창이란 자가 임금을 막아 임금께서 끝내 오지 못하셨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가는 것도 누가 시키는 듯하고 멈추는 것도 누가 막는 듯하나, 가고 멈춤은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내가 노후(魯侯)를 만나지 못함은 하늘의 뜻이다. 장씨(臧氏)의 아들이 어찌 나로 하여금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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