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16 설산훈(說山訓)

회남자(淮南子) · 전한 유안 · 번역·감수 허유

「설산훈」은 짧은 비유와 격언을 산처럼 쌓아 백 가지 일의 막힘을 뚫고 만물의 이치를 깨우치는 편이다. 사물의 유추(類推)와 대비를 통해 도리를 드러내며,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알고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비유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良醫者,常治無病之病,故無病。聖人者,常治無患之患,故無患也。

좋은 의원은 늘 병 없는 병을 다스리므로 병이 없고, 성인은 늘 환난 없는 환난을 다스리므로 환난이 없다.

嘗一臠肉,知一鑊之味;懸羽與炭,而知燥溼之氣;以小明大。

한 점 고기를 맛보면 한 솥의 맛을 알고, 깃과 숯을 매달면 마르고 젖은 기운을 아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밝힌다.

所受者小則所見者淺,所受者大則所照者博。

받는 바가 작으면 보는 바가 얕고, 받는 바가 크면 비추는 바가 넓다.

번역

백(魄)이 혼(魂)에게 물었다. "도는 무엇으로 본체를 삼는가?" 혼이 대답하였다. "무유(無有)로 본체를 삼는다." 백이 말하였다. "무유에 형체가 있는가?" 혼이 말하였다. "없다."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혼이 말하였다. "나는 다만 그것을 만난 바가 있을 뿐이다. 보아도 형체가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으니 이를 일러 그윽하고 어둠이라 한다. 그윽하고 어둠이란 도를 비유하는 것이지 도 자체는 아니다." 백이 말하였다. "내 이를 얻었도다! 이에 안으로 보아 스스로 돌이키리라." 혼이 말하였다. "무릇 도를 얻은 자는 형체를 볼 수 없고 이름을 드날릴 수 없다. 이제 네가 이미 형체와 이름이 있으니 어찌 도가 능한 바이겠는가!" 백이 말하였다. "말하는 자는 홀로 무엇하는 자인가?" "나는 장차 내 근본으로 돌아가리라." 백이 돌아보니 혼이 홀연 보이지 않았고, 돌이켜 스스로 살피니 또한 형체 없음에 잠겼다.

사람은 작게 배우지 않으면 크게 미혹되지 않고, 작게 슬기롭지 않으면 크게 어리석지 않다. 사람은 거품 이는 빗물에 비추지 않고 맑은 물에 비추니, 그것이 멈추어 일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첨공(詹公)의 낚시는 천 년 묵은 잉어도 피하지 못하고, 증자(曾子)가 상여 수레를 부둥키매 끄는 자가 멈추었으며, 노모가 가며 노래하매 신희(申喜)를 움직인 것은 정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가 윤택하고, 못에 진주가 생기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지렁이는 근골의 강함과 발톱과 이의 날카로움이 없으되 위로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 누런 샘을 마심은 마음 씀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맑음이 밝음이 되면 한 잔 물에도 눈동자가 보이고, 흐림이 어둠이 되면 황하의 물에도 태산이 보이지 않는다. 해를 보는 자는 눈이 어지럽고 우레를 듣는 자는 귀가 먹으니, 사람은 함이 없으면 다스려지고 함이 있으면 상한다. 무위하여 다스려지는 자는 없음을 싣고, 하는 자는 능히 가지지 못하니, 능히 무위하지 못하는 자는 능히 유위하지 못한다.

좋은 의원은 늘 병 없는 병을 다스리므로 병이 없고, 성인은 늘 환난 없는 환난을 다스리므로 환난이 없다. 무릇 지극한 공교함은 칼을 쓰지 않고, 잘 닫는 자는 빗장을 쓰지 않는다. 맑음으로 흐림에 들면 반드시 곤욕을 당하고, 흐림으로 맑음에 들면 반드시 뒤집힌다. 군자가 선에 대함은 나무하는 자가 한 줄기 풀을 보면 줍고 푸른 파를 보면 뽑음과 같다. 하늘이 두 기운이면 무지개를 이루고, 땅이 두 기운이면 새어 갈무리하며, 사람이 두 기운이면 병을 이룬다. 음양은 겨울이면서 여름일 수 없고, 달은 낮을 모르고 해는 밤을 모른다.

활을 잘 쏘는 자는 발하여 표적을 잃지 않으니 쏘기는 잘하나 쏠 바를 잘하지 못하고, 낚시를 잘하는 자는 잃는 바가 없으니 낚기는 잘하나 낚을 바를 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잘하는 바가 있으면 잘 못하는 바가 있다. 종(鐘)과 경(磬)은 가까우면 종소리가 차고 멀면 경소리가 분명하니, 사물에는 본래 가까운 것이 먼 것만 못하고 먼 것이 가까운 것만 못한 것이 있다. 벼는 물에서 나되 여울 흐름에서는 나지 못하고, 자줏빛 지초는 산에서 나되 반석 위에서는 나지 못하며, 자석은 쇠를 끌되 구리에 미쳐서는 행하지 못한다. 물이 넓으면 물고기가 크고 산이 높으면 나무가 길다.

성인은 바람보다 먼저 불지 않고 우레보다 먼저 깨뜨리지 않으며, 부득이하여 움직이므로 매임이 없다. 달이 위에서 차고 기울면 소라와 조개가 아래에서 응하니, 같은 기운이 서로 움직임은 멀다고 할 수 없다. 활을 잡고 새를 부르고 막대를 휘두르며 개를 부르면, 이르게 하려 하나 도리어 달아난다. 그러므로 물고기는 미끼 없이 낚을 수 없고, 짐승은 헛기운으로 부를 수 없다.

산에 사나운 짐승이 있으면 숲의 나무가 베이지 않고, 동산에 쏘는 벌레가 있으면 명아주와 콩잎이 캐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구하면 아름다움을 얻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구하지 않으면 아름다우며, 추함을 구하면 추함을 얻지 못하고 추하지 않음을 구하면 추함이 있으니, 아름다움도 구하지 않고 추함도 구하지 않으면 아름다움도 없고 추함도 없으니 이를 일러 현동(玄同)이라 한다. 사람이 말 많음은 백 가지 혀의 소리와 같고, 사람이 말 적음은 기름 치지 않은 문과 같다.

천 년 묵은 소나무는 아래에 복령(茯苓)이 있고 위에 토사(兔絲)가 있으며, 위에 시초(蓍) 떨기가 있으면 아래에 엎드린 거북이 있으니, 성인은 밖으로부터 안을 알고 드러난 것으로 숨은 것을 본다. 갑옷 입는 자는 열 걸음 안을 위함이 아니니, 백 걸음 밖이면 얕고 깊음을 다툰다. 깊으면 오장에 이르고 얕으면 살갗에 그치니, 죽고 삶의 거리를 거리로 잴 수 없다.

대부 종(種)은 월(越)을 강하게 할 줄 알았으되 몸을 보존할 줄 몰랐고, 장홍(萇弘)은 주(周)의 존속을 알았으되 제 몸이 망할 까닭을 몰랐으니, 먼 것을 알고 가까운 것을 몰랐다. 말이 사납게 굴까 두려워 감히 타지 못하고 수레가 뒤집힐까 두려워 감히 타지 못함은, 헛된 화로써 공의 이로움을 막는 것이다. 범씨(范氏)가 패함에 그 종을 훔쳐 지고 달아나는 자가 있었는데, 쟁그랑 소리가 나매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 급히 제 귀를 막았다. 남이 들음을 미워함은 옳으나 제 귀를 막음은 어그러진 것이다.

바늘을 먼저 하고 실을 뒤에 하면 휘장을 이룰 수 있으나, 실을 먼저 하고 바늘을 뒤에 하면 옷을 이룰 수 없다. 바늘이 장막을 이루고 흙더미가 성을 이루니, 일의 이루고 패함은 반드시 작은 데서 생긴다. 물들이는 자가 푸름을 먼저 하고 검음을 뒤에 하면 되나 검음을 먼저 하고 푸름을 뒤에 하면 안 되며, 장인이 옻을 아래에 하고 붉음을 위에 하면 되나 붉음을 아래에 하고 옻을 위에 하면 안 된다. 만사가 이로 말미암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하며 위에 하고 아래에 하는 바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물이 흐려 물고기가 입을 내밀고 형체가 수고로우면 정신이 어지러우니, 그러므로 나라에 어진 임금이 있으면 만 리에서 적을 꺾는다. 중매로 인하여 시집가나 중매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고, 사람으로 인하여 사귀나 사람으로 인하여 친하지 않는다. 행함이 합하고 나아감이 같으면 천 리에서도 서로 좇고, 행함이 합하지 않고 나아감이 같지 않으면 문을 마주해도 통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비록 커도 썩은 것과 티끌을 받지 않고, 일월이 그 기운 아닌 것에 응하지 않으며, 군자가 그 부류 아닌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빛을 틈에서 받으면 한 모퉁이를 비추고, 빛을 창에서 받으면 북쪽 벽을 비추며, 빛을 문에서 받으면 방 안에 남는 물건이 없거늘, 하물며 빛을 우주에서 받음에랴! 천하가 그 앞에서 밝음을 빌리지 않음이 없다. 이로 보건대 받는 바가 작으면 보는 바가 얕고, 받는 바가 크면 비추는 바가 넓다. 강은 민산(岷山)에서 나고 황하는 곤륜(昆侖)에서 나며 제수(濟)는 왕옥(王屋)에서 나고 영수(潁)는 소실(少室)에서 나며 한수(漢)는 파총(嶓冢)에서 나, 흐름을 나누어 어긋나게 달리나 동해로 흘러드니, 가는 바는 다르되 돌아가는 바는 하나이다.

추위는 추위를 낳지 못하고 더위는 더위를 낳지 못하니,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것이 능히 추위와 더위를 낳는다. 그러므로 형체 있음은 형체 없음에서 나오니, 천지가 천지를 낳음이 있은 적이 없으매 지극히 깊고 미묘하고 넓고 크도다! 비가 모일 때는 능히 적시지 못하고 그치기를 기다린 뒤에야 능히 적시며, 화살이 발할 때는 능히 꿰지 못하고 그치기를 기다린 뒤에야 능히 뚫으니, 오직 그침만이 능히 뭇 그침을 그치게 한다.

성인이 사물을 씀은 붉은 실로 짚강아지를 묶고 흙용을 만들어 비를 구함과 같다. 짚강아지는 그것을 기다려 복을 구하고 흙용은 그것을 기다려 먹이를 얻는다. 노(魯)나라 사람이 몸소 갓을 잘 짓고 아내가 신을 잘 짰는데, 월(越)나라로 옮겨가 크게 곤궁하였다. 그 닦은 바를 가지고 쓰이지 않는 고장에 노닌 까닭이니, 비유하면 산 위에 연(荷)을 심고 우물 속에 불을 기름과 같다.

서시(西施)의 얼굴을 그리면 아름다우나 기뻐할 수 없고, 맹분(孟賁)의 눈을 그리면 크나 두려워할 수 없으니, 형체를 주재하는 것(君形者)이 없기 때문이다. 등산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라보고자 하게 하고 깊은 데 임함은 엿보고자 하게 하니, 처한 바가 그렇게 한 것이다. 활쏘기는 사람을 단정하게 하고 낚시는 사람을 공손하게 하니, 일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이미 도(道)를 죽고 사는 데 같이함은 성인도 하고 어리석은 자도 하나, 성인이 죽고 삶을 같이함은 분리(分理)에 통한 것이요, 어리석은 자가 죽고 삶을 같이함은 이해의 소재를 모르는 것이다. 서언왕(徐偃王)은 인의로써 나라를 망쳤으나 나라를 망친 것이 반드시 인의는 아니며, 비간(比干)은 충성으로 그 몸을 흩었으나 베임당한 것이 반드시 충성은 아니다.

명월의 진주는 조개에서 나고, 주(周)의 간규(簡圭)는 더러운 돌에서 나며, 큰 채(蔡)의 신령한 거북은 도랑에서 나온다. 천 년 묵은 소나무 아래 복령, 위에 토사… 성인은 외형으로 내실을 안다. 한 점 고기를 맛보면 한 솥의 맛을 알고, 깃과 숯을 매달면 마르고 젖은 기운을 아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밝힌다. 한 잎 떨어짐을 보고 해가 저물려 함을 알고,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의 추움을 아니,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의론한다.

송곳돌이 날카롭지 않아도 쇠를 날카롭게 할 수 있고, 도지개가 바르지 않아도 활을 바르게 할 수 있으니, 사물에는 본래 바르지 않으면서 바르게 할 수 있고 날카롭지 않으면서 날카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힘은 가지런함을 귀히 여기고 지혜는 빠름을 귀히 여기니, 얻음이 같으면 빠름이 으뜸이요 이김이 같으면 더딤이 아래이다. 막야(鏌邪)를 귀히 여기는 까닭은 사물에 응하여 끊고 가르기 때문이다. 공자가 진(陳)·채(蔡)에서 곤궁했다 하여 육예(六藝)를 폐한다면 미혹이요, 의원이 제 병을 못 고친다 하여 병들어 약을 쓰지 않는다면 어그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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