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12 도응훈(道應訓)
「도응(道應)」은 역사 속 고사가 도(道)에 호응함[道應]을 밝힌다는 뜻이다. 한 편 전체가 일화(逸話)와 문답의 연속이며, 각 단락 끝에 그 이치를 입증하는 노자(老子)·장자(莊子)·신자(愼子)·관자(管子)의 말을 인용한다. 도가적 무위(無爲)·겸하(謙下)·지족(知足)·수약(守約)의 처세를 구체적 사례로 보인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故至言去言,至為無為。
그러므로 지극한 말은 말을 떠나고, 지극한 함은 함이 없다.
勝非其難也,持之者其難也。
이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킴이 어렵다.
得其精而忘其粗,在內而忘其外。
그 정(精)을 얻고 거친 것을 잊으며, 안을 보고 밖을 잊는다. (백락의 천리마 보는 법)
物盛而衰,樂極則悲,日中而移,月盈而虧。
사물은 성하면 쇠하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프며, 해가 중천에 오르면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진다.
번역
도는 알 수 없는 것 — 태청과 무궁·무위·무시
태청(太淸)이 무궁자(無窮子)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를 아는가?" 무궁자가 "나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무위(無爲)에게 물으니 "나는 도에 셈이 있음을 안다"고 하였다. "그 셈은 어떠한가?" "도는 약할 수도 강할 수도, 부드러울 수도 굳셀 수도, 음일 수도 양일 수도, 그윽할 수도 밝을 수도 있으며, 천지를 감쌀 수도 일정한 방위 없이 응대할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도의 셈을 아는 까닭이다." 태청이 무시(無始)에게 물으니, 무시가 "알지 못함이 깊고 앎이 얕으며, 알지 못함이 안이고 앎이 밖이며, 알지 못함이 정밀하고 앎이 거칠다"고 하였다. 태청이 우러러 탄식하였다. "그렇다면 알지 못함이 곧 앎이요, 앎이 곧 알지 못함인가?" 무시가 "도는 들을 수 없으니 들으면 그른 것이요, 도는 볼 수 없으니 보면 그른 것이며, 도는 말할 수 없으니 말하면 그른 것이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천하가 모두 선(善)이 선됨을 알면 이는 불선이다"라 하였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백공의 미언(微言) — 지극한 말은 말을 떠난다
백공(白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사람은 은밀한 말[微言]을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응하지 않았다. 백공이 "돌을 물에 던지듯 하면 어떻습니까?" 하니, "오(吳)·월(越)의 헤엄 잘 치는 자가 그것을 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물을 물에 던지듯 하면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가 "치수(菑水)와 민수(澠水)의 물이 합쳐져도 역아(易牙)는 맛보고 안다"고 하였다. 백공이 "그렇다면 사람은 본디 은밀한 말을 할 수 없습니까?" 하니, 공자가 "어찌 할 수 없겠는가? 다만 말의 뜻을 아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무릇 말의 뜻을 아는 자는 말로써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극한 말은 말을 떠나고[至言去言], 지극한 함은 함이 없다[至為無為]"고 하였다. 백공이 깨닫지 못하여 마침내 욕실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주인이 있으니, 오직 앎이 없는지라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혜자의 국법 — 다스림에는 예가 있고 문변에 있지 않다
혜자(惠子)가 혜왕(惠王)을 위해 국법을 만들어 적전(翟煎)에게 보이니 "좋다"고 하였다. 혜왕이 "좋으나 행할 수 있는가?" 하니, 적전이 "불가합니다" 하였다. "좋은데 행할 수 없다니 어째서인가?" 적전이 답하였다. "지금 큰 나무를 드는 자가 앞에서 '어여차' 부르면 뒤에서 또 응합니다. 이는 무거운 것을 들 때 힘을 권하는 노래이니, 어찌 정(鄭)·위(衛)의 격렬한 음악이 없겠습니까마는 쓰지 않는 것은 이만큼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다스림에는 예가 있고 문변(文辯)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노자가 "법령이 밝아질수록 도적이 많아진다"고 하였다.
전병·백공·조양자 — 도와 겸하
전병(田駢)이 도술로 제왕(齊王)을 설득하니, 왕이 "과인이 가진 것은 제나라이다. 도술이 환난을 제거할 수 있다 하나, 나라의 정치를 듣고자 한다" 하였다. 전병이 "신의 말은 정치가 없으나 정치가 될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숲의 나무가 재목은 아니나 재목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 하였다. 재목은 숲에 미치지 못하고, 숲은 비에 미치지 못하며, 비는 음양에 미치지 못하고, 음양은 화기(和)에 미치지 못하며, 화기는 도(道)에 미치지 못한다.
백공승(白公勝)이 형(荊)나라를 얻고도 곳간을 사람들에게 나누지 못하였다. 이레가 지나 석을(石乙)이 들어와 "의롭지 않게 얻고 또 베풀지 못하면 환난이 반드시 이를 것이니, 차라리 태우십시오"라 하였으나 백공이 듣지 않았다. 아흐레 만에 섭공(葉公)이 들어와 큰 곳간의 재화를 풀어 무리에게 주고 높은 무기고의 병기를 백성에게 나누어 그를 쳤다. 나라가 그의 것이 아닌데 가지려 함은 지극한 탐욕이요, 남을 위하지도 자신을 위하지도 못함은 지극한 어리석음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가지고 채우는 것은 그침만 못하고, 갈아 날카롭게 함은 오래 보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조간자(趙簡子)가 양자(襄子)를 후계로 삼으니 동알우(董閼於)가 "무휼(無恤, 양자)은 천한데 후계로 삼음은 어째서입니까?" 물었다. 간자가 "이 사람됨이 능히 사직을 위해 수치를 참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뒷날 지백(知伯)이 양자와 술 마시다 그 머리를 쳤다. 대부가 죽이기를 청하니, 양자가 "선군이 나를 세움은 사직을 위해 수치를 참을 수 있다 함이었지 어찌 사람을 찌를 수 있다 함이었겠는가!" 하였다. 열 달 뒤 지백이 양자를 진양(晉陽)에서 포위하니, 양자가 군대를 풀어 쳐서 지백을 크게 깨뜨리고 그 머리를 쪼개 술잔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수컷을 알되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고 하였다.
조양자의 근심 — 이긴 뒤를 지키는 어려움
조양자가 적(翟)을 쳐 이기고 우인(尤人)·종인(終人) 두 성을 취하였다. 사자가 알리니 양자가 막 밥을 먹으려다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 좌우가 "하루아침에 두 성을 얻음은 기뻐할 일인데 근심하심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양자가 "강하(江河)의 큼도 사흘을 넘지 않고 회오리바람과 폭우도 한낮을 못 가거늘, 지금 조씨의 덕행이 쌓인 바 없이 하루아침에 두 성을 얻었으니, 망함이 나에게 미칠까 두렵다"고 하였다. 공자가 듣고 "조씨가 창성하겠구나!"라 하였다. 무릇 근심은 창성하는 까닭이요 기쁨은 망하는 까닭이니, 이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지킴이 어렵다. 그러므로 노자가 "도는 비어 있으나 써도 차지 않는다"고 하였다.
혜맹과 송왕 — 큰 용기는 도리어 용기가 아니다
혜맹(惠孟)이 송 강왕(宋康王)을 만나니, 왕이 "과인이 좋아하는 것은 용기와 공이지 인의를 행하는 자가 아니오. 객은 무엇으로 과인을 가르치겠소?" 하였다. 혜맹이 "신에게 도가 있어, 사람이 비록 용감해도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쳐도 맞지 않게 합니다"라 하였다. 이어 "신에게 도가 있어, 천하 남녀가 흔연히 그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니, 이는 용기 있고 힘 있음보다 어진 것입니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감히 하지 않음에 용감하면 산다"고 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큰 용기는 도리어 용기 아님이 된다. 옛날 요(堯)의 보좌가 아홉 사람, 순(舜)의 보좌가 일곱 사람, 무왕(武王)의 보좌가 다섯 사람이었으나, 이들은 그 아홉·일곱·다섯 중 한 가지 일도 능하지 못하면서 팔짱 끼고 공을 이루었으니, 사람의 자질을 잘 탔을 뿐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큰 장인을 대신해 깎는 자는 그 손을 다치지 않음이 드물다"고 하였다.
박의·두혁 — 안 다스려도 다스려짐
박의(薄疑)가 위 사군(衞嗣君)을 왕도(王術)로 설득하니, 사군이 "내가 가진 것은 천승(千乘)이니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고 하였다. 박의가 "오획(烏獲)은 천 균을 드는데 하물며 한 근이겠습니까?"라 하였다. 두혁(杜赫)이 천하를 안정시킴으로 주 소문군(周昭文君)을 설득하니, 문군이 "주를 안정시키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하였다. 두혁이 "신의 말이 불가하면 주를 안정시킬 수 없고, 신의 말이 가하면 주가 스스로 안정됩니다"라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안정시키지 않고도 안정됨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큰 마름질은 가름이 없다"고 하였다.
자공의 속전(贖錢) — 풍속을 바꾸는 행동
노(魯)나라 법에, 노 사람이 제후에게 첩이 된 자를 속량할 수 있는 자는 곳간에서 돈을 받게 하였다. 자공(子贛)이 제후에게서 노 사람을 속량하고도 돌아와 돈을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공자가 "사(賜, 자공)가 잘못하였다. 무릇 성인이 일을 함은 풍속을 바꿀 수 있어야 하니, 지금 나라에 부유한 자는 적고 가난한 자는 많은데, 속량하고 돈을 받으면 청렴하지 못한 것이 되고, 돈을 받지 않으면 다시는 속량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노 사람이 다시는 제후에게서 속량하지 않을 것이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작은 것을 봄을 밝다 한다"고 하였다.
위무후와 이극 — 자주 이기는 나라가 망한다
위 무후(魏武侯)가 이극(李克)에게 "오(吳)가 망한 까닭은 무엇이오?" 물으니, 이극이 "자주 싸워 자주 이겼기 때문입니다"라 하였다. 무후가 "자주 싸워 자주 이김은 나라의 복인데 그것으로 망했다니 어째서요?" 하니, "자주 싸우면 백성이 지치고 자주 이기면 임금이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임금이 지친 백성을 부리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 자가 드뭅니다"라 하였다. 노자가 "공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나면 몸은 물러남이 하늘의 도이다"라 하였다.
영월과 환공 — 작은 흠으로 큰 미덕을 잊지 말라
영월(甯越)이 제 환공(齊桓公)에게 등용되고자 하였으나 곤궁하여 스스로 이를 수 없어, 상인이 되어 짐수레를 끌고 제나라에 갔다. 성문 밖에서 묵다가 소뿔을 치며 슬픈 상가(商歌)를 부르니, 환공이 듣고 "노래하는 자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라 하며 뒷수레에 태우게 하였다. 신하들이 다투어 "객은 위(衛) 사람이니 사람을 보내 물어보소서" 하니, 환공이 "그렇지 않다. 물어보면 그 작은 허물을 근심하게 된다. 사람의 작은 허물로 사람의 큰 아름다움을 잊음은 임금이 천하의 선비를 잃는 까닭이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도도 크고 왕도 크니, 경계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어 왕이 그 하나에 처한다"고 하였다.
대왕단보 — 봉양하는 바로 봉양을 해치지 않는다
대왕단보(大王亶父)가 빈(邠)에 살 때 적인(翟人)이 침공하였다. 가죽과 비단, 주옥으로 섬겨도 받지 않으니, "적인이 구하는 것은 땅이다"라 하였다. 단보가 "남의 형과 살며 그 아우를 죽이고, 남의 아비와 살며 그 자식을 죽이는 일을 나는 하지 않겠다. 또 봉양하는 바(땅·백성)로 봉양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라 하며 지팡이를 짚고 떠나니, 백성이 서로 이어 따라 마침내 기산(岐山) 아래 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몸을 천하만큼 귀히 여기면 천하를 맡길 만하다"고 하였다.
중산공자모·초장왕 — 몸을 다스림이 근본
중산공자모(中山公子牟)가 첨자(詹子)에게 "몸은 강호에 있으나 마음은 궁궐 아래 있으니 어찌하리까?" 물으니, 첨자가 "삶을 무겁게 여기라[重生]. 삶을 무겁게 여기면 이익을 가벼이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화기를 앎을 항상[常]이라 하고, 항상을 앎을 밝음[明]이라 한다"고 하였다.
초장왕(楚莊王)이 첨하(詹何)에게 "나라를 다스림은 어찌하오?" 물으니, "어찌하여 몸을 다스림에는 밝으면서 나라를 다스림에는 밝지 못하십니까?" 하였다. 왕이 "종묘사직을 세웠으니 지키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하니, 첨하가 "신은 몸이 다스려지는데 나라가 어지러운 경우를 들은 적이 없고, 몸이 어지러운데 나라가 다스려지는 경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은 몸에 있으니 감히 말단으로 답하지 못합니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이를 몸에 닦으면 그 덕이 참되다"고 하였다.
윤편의 수레바퀴 — 성인의 책은 찌꺼기
환공(桓公)이 마루에서 책을 읽는데 윤편(輪扁)이 마루 아래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망치와 끌을 놓고 환공에게 "임금이 읽는 것은 무슨 책입니까?" 물으니, "성인의 책이다" 하였다. "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다만 성인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환공이 노하여 "내가 책을 읽는데 장인이 어찌 비방하는가! 설명이 있으면 좋으나 없으면 죽으리라!" 하였다. 윤편이 "신이 바퀴 깎는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빠르면 거칠어 들어가지 않고 너무 더디면 헐거워 견고하지 못하니,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게 손에 응하고 마음에 흡족함은 신이 신의 자식에게도 가르칠 수 없고 자식도 신에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칠십이 되도록 바퀴를 깎습니다. 지금 성인의 말한 바도 그 실질을 품고 죽었으니 다만 그 찌꺼기만 남았을 뿐입니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항상한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항상한 이름이 아니다"라 하였다.
사성자한 — 권병(權柄)을 남에게 보이지 말라
옛날 사성자한(司城子罕)이 송(宋)의 재상이 되어 송 임금에게 "나라의 안위와 백성의 치란은 임금이 상벌을 행함에 달렸습니다. 작위와 상은 백성이 좋아하니 임금이 직접 행하시고, 살육과 형벌은 백성이 원망하니 신이 맡겠습니다"라 하였다. 임금이 허락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살육의 전권이 자한에게 있음을 알아, 대신은 그를 친히 하고 백성은 그를 두려워하여, 한 해도 안 되어 자한이 임금을 물리치고 정권을 오로지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물고기는 못을 벗어날 수 없고, 나라의 이기(利器)는 남에게 보일 수 없다"고 하였다.
왕수의 분서 — 때를 아는 자는 일정한 행함이 없다
왕수(王壽)가 책을 지고 가다 주(周)에서 서풍(徐馮)을 만났다. 서풍이 "일이란 변화에 응하여 움직이고 변화는 때에서 생기니, 때를 아는 자는 일정한 행함이 없다. 책은 말이 나온 바이니, 지혜로운 자는 책을 간직하지 않는다"라 하니, 왕수가 책을 태우고 춤추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가운데를 지킴만 못하다"고 하였다.
진문공·월왕구천·조양자 — 부드러움과 부쟁(不爭)
진문공(晉文公)이 원(原)을 치며 대부와 사흘을 기약하였다. 사흘에 원이 항복하지 않으니 문공이 떠나게 하였다. 군리가 "원이 하루이틀이면 항복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신의를 잃고 원을 얻음을 나는 하지 않겠다"라 하였다. 원 사람들이 듣고 "이런 임금이 있으니 항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며 마침내 항복하였다. 온(温) 사람도 듣고 항복을 청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정(精)이 있으니, 그 정이 매우 참되어 그 가운데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월왕 구천(勾踐)이 오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나라가 깨지고 몸이 회계(會稽)에서 곤궁하였으나, 몸소 신하 되고 처를 첩 삼아 오의 군대 앞에서 말을 몰아, 마침내 간수(幹遂)에서 오를 사로잡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을 이김을 천하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조간자가 죽어 아직 장사 지내기 전에 중모(中牟)가 제나라에 들어갔다. 장사 지낸 닷새 만에 양자가 군대를 일으켜 포위하였는데, 합치기 전에 성이 저절로 수십 길 무너졌다. 양자가 징을 쳐 물러나니, 군리가 "하늘이 돕거늘 어찌 물러납니까?" 하니, 양자가 "군자는 이로움으로 남을 타지 않고 험함으로 남을 핍박하지 않는다 들었다. 성을 고치게 한 뒤 친다"고 하였다. 중모가 그 의를 듣고 항복을 청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가 더불어 다툴 수 없다"고 하였다.
백락의 천리마 보는 법 — 정을 얻고 거친 것을 잊는다
진 목공(秦穆公)이 백락(伯樂)에게 "그대가 늙었으니, 자손 중에 말을 구할 만한 자가 있는가?" 물으니, "좋은 말은 형체와 근골로 볼 수 있으나, 천하의 말[天下之馬]은 어렴풋하여 그 하나를 잊은 듯합니다. 신의 자식들은 하재(下材)라 좋은 말은 일러줄 수 있으나 천하의 말은 일러줄 수 없습니다. 신과 함께 땔나무 지던 구방인(九方堙)이 말에 있어 신만 못하지 않으니 보여드리겠습니다"라 하였다. 목공이 그를 시켜 말을 구하게 하니, 석 달 만에 "사구(沙丘)에서 말을 얻었습니다. 누런 수컷입니다"라 하였다. 사람을 보내 취하니 검은 암컷이었다. 목공이 기뻐하지 않으며 백락을 불러 "그대가 시킨 자가 털빛과 암수도 알지 못하니 어찌 말을 알겠는가?" 하니, 백락이 크게 탄식하며 "구방인이 본 것은 천기(天機)입니다. 그 정(精)을 얻고 거친 것을 잊으며, 안을 보고 밖을 잊은 것입니다"라 하였다. 말이 이르니 과연 천리마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큰 곧음은 굽은 듯하고, 큰 기교는 졸렬한 듯하다"고 하였다.
오기와 굴의구 — 옛것을 바꾸는 자는 불리하다
오기(吳起)가 초(楚) 영윤(令尹)이 되어 위(魏)에 가서 굴의구(屈宜若)에게 "내가 영윤이 되었으니 나의 사람됨을 보아주시오"라 하였다. 오기가 "초의 작위를 줄이고 봉록을 고르게 하며,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데 보태고, 갑병을 갈아 천하에 이익을 다투겠소"라 하니, 굴자가 "옛날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그 옛것을 바꾸지 않고 그 떳떳함을 고치지 않았소. 지금 그대가 옛것을 바꾸고 떳떳함을 고치니, 행하는 자는 불리하오. 노여움은 거스르는 덕이요 병기는 흉기이며 다툼은 사람의 말단이니, 그대가 거스르는 덕을 음모하고 흉기를 즐겨 쓰며 말단에서 시작하니, 거스름이 지극하오"라 하였다. 노자가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어지러움을 풀며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그 티끌과 같이한다"고 하였다.
초장왕과 송경공 — 나라의 허물·재앙을 받는 임금
진(晉)이 초를 쳐 삼사(三舍)를 물러나지 않았다. 대부가 치기를 청하니, 장왕(莊王)이 "선군 때 진이 초를 치지 않았는데 내 몸에 이르러 진이 초를 치니, 이는 나의 허물이다. 어찌 여러 대부를 욕되게 하랴?" 하며 엎드려 울고 일어나 대부에게 절하였다. 진 사람이 듣고 "임금과 신하가 다투어 허물을 자기에게 돌리고 또 신하에게 몸을 낮추니 칠 수 없다" 하며 밤에 군대를 돌렸다. 노자가 "나라의 더러움을 받을 수 있어야 사직의 주인이라 한다"고 하였다.
송 경공(宋景公) 때 형혹성(熒惑, 화성)이 심수(心宿)에 머물렀다. 공이 두려워 자위(子韋)를 불러 물으니, "형혹은 하늘의 벌이요 심은 송의 분야이니 화가 임금에게 닥칠 것이나, 재상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라 하였다. 공이 "재상은 나라를 다스리게 한 자인데 죽음을 옮김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였다. "백성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 "백성이 죽으면 내가 누구의 임금이 되겠는가? 차라리 혼자 죽겠다." "흉년에 옮길 수 있습니다." "흉년이 들면 백성이 반드시 죽으니, 임금으로서 백성을 죽여 스스로 살고자 하면 누가 나를 임금으로 여기겠는가? 이는 내 명이 이미 다한 것이다"라 하였다. 자위가 물러나 북면하여 두 번 절하며 "임금께 경하 드립니다. 임금에게 임금다운 말이 세 마디 있으니, 하늘이 반드시 세 번 상을 내려 오늘 밤 별이 세 별자리[三舍]를 옮겨 임금의 수명이 스물한 해 늘 것입니다"라 하였다. 그날 밤 별이 과연 세 별자리를 옮겼다. 그러므로 노자가 "나라의 상서롭지 못함을 받을 수 있어야 천하의 왕이라 한다"고 하였다.
공손룡·자발 등 — 재능 있는 자를 거스르지 않음, 공을 차지하지 않음
옛날 공손룡(公孫龍)이 조(趙)에 있을 때 제자에게 "능력 없는 자와는 함께 노닐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친 옷에 새끼 띠를 두른 객이 와서 "신은 부를 줄 압니다[能呼]"라 하니, 공손룡이 제자로 들였다. 며칠 뒤 연왕(燕王)을 설득하러 강가에 이르니 나룻배가 건너편에 있었다. 부를 줄 아는 자를 시켜 부르니 한 번 불러 배가 왔다. 그러므로 성인은 세상에 처하며 재능 있는 선비를 거스르지 않는다. 노자가 "사람을 버림이 없고 사물을 버림이 없으니 이를 습명(襲明)이라 한다"고 하였다.
자발(子發)이 채(蔡)를 쳐 이기니 선왕(宣王)이 교외에서 맞아 밭 백 이랑을 봉하려 하였으나 자발이 사양하며 "나라를 세우고 정사를 행함은 임금의 덕이요, 호령을 내려 적이 달아남은 장군의 위엄이며, 진을 쳐 적을 이김은 백성의 힘입니다. 백성의 공로를 타 작록을 취함은 인의의 도가 아닙니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공이 이루어져도 머물지 않으니, 오직 머물지 않으므로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공의휴(公儀休)가 노의 재상으로 물고기를 좋아하였다. 온 나라가 물고기를 바쳐도 받지 않았다. 제자가 "물고기를 좋아하면서 받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물고기를 좋아하므로 받지 않는다. 물고기를 받아 재상에서 면직되면 좋아해도 스스로 물고기를 댈 수 없으나, 받지 않아 면직되지 않으면 길이 스스로 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그 몸을 뒤로 하되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밖으로 하되 몸이 보존된다.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룬다"고 하였다.
손숙오(孫叔敖)가 호구장인(狐丘丈人)에게서 "사람에게 세 가지 원망이 있으니, 작위 높은 자는 선비가 시기하고, 관직 큰 자는 임금이 미워하며, 봉록 두터운 자는 원망이 처한다"는 말을 듣고, "내 작위가 높을수록 내 뜻을 낮추고, 내 관직이 클수록 내 마음을 작게 하며, 내 봉록이 두터울수록 내 베풂을 넓히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귀함은 반드시 천함을 근본으로 하고, 높음은 반드시 낮음을 기초로 한다"고 하였다.
안회의 좌망(坐忘)과 여러 일화
안회(顏回)가 중니(공자)에게 "저는 나아갔습니다" 하니, "무슨 말이냐?" "저는 예악을 잊었습니다." "좋으나 아직 멀었다." 뒷날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좋으나 아직 멀었다." 뒷날 "저는 좌망(坐忘)하였습니다." 중니가 놀라 "무엇이 좌망이냐?" 하니, 안회가 "사지를 떨구고 총명을 물리치며 형체를 떠나고 앎을 버려 큰 통함에 통함, 이를 좌망이라 합니다"라 하였다. 중니가 "통하면 좋아함이 없고 변화하면 항상함이 없으니, 내 그대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혼백을 싣고 하나를 안아 떠나지 않을 수 있으며, 기운을 오로지하여 지극히 부드럽게 함을 갓난아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진 목공이 군대를 일으켜 정(鄭)을 습격하려 하니, 건숙(蹇叔)이 "안 됩니다. 나라를 습격하는 자는 수레로 백 리, 사람으로 삼십 리를 넘지 않으니, 모의가 새어 나가기 전, 갑병이 무뎌지기 전에 그 기세를 타기 때문입니다. 지금 수천 리를 가며 여러 제후의 땅을 지나 나라를 습격함은 신은 가하다고 보지 않습니다"라 하였다. 목공이 듣지 않았다. 정나라 상인 현고(弦高)가 정백(鄭伯)의 명을 사칭해 열두 마리 소로 진의 군대를 위로하니, 군대가 두려워 "수천 리를 와서 습격하려 했는데 이미 알았으니 대비가 갖춰졌을 것이다" 하며 돌아갔다. 그때 진문공이 막 죽어 장사 지내지 않았는데, 선진(先軫)이 양공(襄公)에게 진(秦)을 칠 것을 청하여 효(殽)에서 진의 군대를 크게 깨뜨리고 세 장수를 사로잡았다. 목공이 듣고 소복으로 사당에서 무리에게 사죄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알면서 알지 못하는 듯함이 최상이요,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함이 병이다"라 하였다.
노오와 약사 — 작은 앎은 큰 앎에 미치지 못한다
노오(盧敖)가 북해에 노닐다 몽곡(蒙穀) 위에서 한 선비를 보았다. 눈이 깊고 귀밑머리가 검으며 바람을 맞아 춤추다가 노오를 보고 비석 뒤로 달아났다. 노오가 다가가 "나는 무리를 떠나 육합 밖을 끝까지 본 자인데, 그대와 벗이 될 만한가?" 하니, 그 선비가 웃으며 "그대는 중원 사람이니 어찌 여기까지 멀리 왔는가? 이는 오히려 해와 달의 빛이 비치고 음양이 운행하는 곳이라, 이름 없는 땅에 비하면 골방과 같다. 나는 천지의 밖에서 노니니, 그대가 노닌 곳은 여기서 비로소 시작인데 이미 끝까지 봤다 하니 어찌 멀지 않은가!"라 하였다. 그 선비가 팔을 들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노오가 우러러보다 보이지 않아 슬퍼하며 "나를 그대에 비하면 누런 고니와 작은 벌레 같다. 종일 가도 지척을 못 떠나면서 멀다 여겼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라 하였다. 그러므로 장자가 "작은 햇수는 큰 햇수에 미치지 못하고, 작은 앎은 큰 앎에 미치지 못하니, 아침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쓰르라미는 봄가을을 모른다"고 하였다.
그림자·도와 무위의 일화들
망량(罔兩, 곁그림자)이 그림자[景]에게 "밝게 빛나는 것이 신명인가?" 물으니, 그림자가 "아니다. 해가 우주를 비춰 밝게 빛나나, 문을 닫고 창을 막으면 들어올 길이 없다. 신명이라면 사방에 두루 흘러 미치지 않음이 없어, 위로 하늘에 닿고 아래로 땅에 서리며 만물을 화육하되 형상으로 삼을 수 없다. 밝게 빛남이 어찌 신명을 밝히기에 족하겠는가!"라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움이 천하의 지극히 굳셈을 부린다"고 하였다.
광요(光耀)가 무유(無有)에게 "그대는 정말로 있는가, 정말로 없는가?" 물으니, 무유가 응하지 않았다. 광요가 그 모습을 보니, 아득하고 황홀하여 보아도 형체가 보이지 않고 들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았다. 광요가 "귀하구나! 누가 이에 이를 수 있는가! 나는 없음[無]을 가질 수 있으나 없음의 없음[無無]을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있음 없음이 틈 없는 데 들어가니, 나는 이로써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고 하였다.
백공승(白公勝)이 난을 꾀하다 조회를 마치고 서서, 채찍을 거꾸로 짚어 끝이 턱을 뚫어 피가 땅에 흘러도 알지 못하였다. 정 사람이 "턱을 잊을 정도면 무엇인들 잊지 않으랴!" 하였다. 이는 정신이 밖으로 넘치고 지려(智慮)가 안으로 흔들리면 그 형체를 다스릴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노자가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을 엿보지 않고도 천도를 보니, 그 나감이 멀수록 그 앎이 적다"고 하였다.
진 황제(秦皇帝)가 천하를 얻고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변방 수자리를 보내고 장성을 쌓으며 관문과 다리를 닦고 장새(障塞)를 설치하였으나, 유씨(劉氏)가 빼앗기를 빗장 돌리듯 쉽게 하였다. 옛날 무왕이 주를 치고 비간(比干)의 무덤을 봉하며 상용(商容)의 마을을 표하고 기자(箕子)의 문에 섶을 쌓으며 성탕(成湯)의 사당에 조회하고 거교(鉅橋)의 곡식을 풀며 녹대(鹿臺)의 돈을 흩고 북을 부수며 활시위를 끊어 평이함을 보였다. 이에 천하가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제후가 폐백을 들고 조회하여 서른네 대를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자가 "잘 닫는 자는 빗장 없이도 열 수 없게 하고, 잘 매는 자는 끈 없이도 풀 수 없게 한다"고 하였다.
손숙오·자비 등 — 정신이 생사에 통함
옛날 손숙오가 세 번 영윤이 되어도 기뻐하는 빛이 없고 세 번 떠나도 근심하는 빛이 없었으며, 연릉계자(延陵季子)는 왕 노릇을 원해도 받지 않고, 허유(許由)는 천하를 사양받아도 받지 않으며, 안자(晏子)는 최저와 맹세하며 죽을 자리에 임해서도 그 의를 바꾸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멀리 통한 바가 있다. 정신이 생사에 통하면 무엇이 미혹하겠는가! 형(荊)의 차비(佽非)가 보검을 얻어 강을 건너는데 양후(陽侯)의 파도와 두 교룡이 배를 감았다. 차비가 눈을 감고 칼을 뽑아 "무사는 인의의 예로 설득할 수 있으나 위협으로 빼앗을 수 없다. 이는 강 속의 썩은 고기와 뼈이니 칼을 버릴 따름이다. 내 무엇을 아끼랴!"라 하며 강에 뛰어들어 교룡을 찔러 머리를 끊으니, 배 안 사람이 모두 살고 풍파가 그쳤다. 그러므로 노자가 "오직 삶을 위함이 없는 자가 삶을 귀히 여기는 자보다 어질다"고 하였다.
(이하 순우곤·전구·묵자·전구의 일화, 풍수의 청렴, 안자와 태복, 위 문후와 예양, 공자와 유치(宥巵), 무왕과 태공의 문답 등 동일한 형식의 일화가 이어지며, 각기 노자·신자 등의 말로 마무리된다.)
공자가 환공(桓公)의 사당을 보다 유치(宥巵)라는 그릇을 보고 "물을 부어보라" 하니, 비면 기울고 가운데 차면 바르며 가득 차면 엎어졌다. 공자가 낯빛을 고치며 "가득 참을 지키는 자로다!"라 하였다. 자공이 "가득 참을 지킴이 무엇입니까?" 물으니, "더하면 덜어내는 것이다. 무릇 사물은 성하면 쇠하고 즐거움이 다하면 슬프며 해가 중천에 오르면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진다. 그러므로 총명예지를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많이 듣고 널리 변론함을 비루함으로 지키며, 무력과 용맹을 두려움으로 지키고, 부귀광대함을 검소함으로 지키며, 덕이 천하에 베풀어짐을 겸양으로 지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노자가 "이 도를 따르는 자는 가득 채우려 하지 않으니, 오직 채우지 않으므로 능히 낡아도 새로 이루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왕이 태공에게 "내가 주를 쳐 천하를 가졌으나, 후세에 용병이 그치지 않고 다툼이 끊이지 않을까 두려우니 어찌하리까?" 물으니, 태공이 "참 좋은 물음입니다"라 하며 백성을 화기로 다스리고 무용한 일을 그치게 하는 방도를 일러주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변화하여 일어나려 하면 나는 이름 없는 소박함으로 진정시키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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