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10 무칭훈(繆稱訓)

회남자(淮南子) · 전한 유안 · 번역·감수 허유

「무칭(繆稱)」은 여러 갈래로 얽어[繆] 일컫는다[稱]는 뜻으로, 도덕·인의에 관한 격언과 비유를 두루 엮은 편이다. 도가 쇠한 뒤 덕이, 덕이 쇠한 뒤 인의가 생긴다는 위계를 밝히고, 정성[誠]이 안에서 형성되어 밖으로 감응함, 군자와 소인의 분별, 작은 선(善)의 축적을 강조하며, 곳곳에 『역(易)』·『시(詩)』를 인용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主者,國之心,心治則百節皆安,心擾則百節皆亂。

임금은 나라의 마음이니, 마음이 다스려지면 모든 마디가 편안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모든 마디가 어지럽다.

故道滅而德用,德衰而仁義生。

그러므로 도가 멸한 뒤 덕이 쓰이고, 덕이 쇠한 뒤 인의가 생긴다.

君子不謂小善不足為也而舍之,小善積而為大善。

군자는 작은 선이라고 할 만하지 않다 하여 버리지 않으니, 작은 선이 쌓여 큰 선이 된다.

性者,所受於天也;命者,所遭于時也。

성품이란 하늘에서 받은 것이요, 천명이란 때에 만난 것이다.

번역

도·덕·인·의의 위계와 마음

도는 지극히 높아 위가 없고 지극히 깊어 아래가 없으며, 수준기처럼 평평하고 먹줄처럼 곧으며, 그림쇠처럼 둥글고 곱자처럼 모나, 우주를 감싸되 표리가 없고 두루 덮고 실어 막힘이 없다. 그러므로 도를 체득한 자는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도 노엽지도 않으며, 앉아 있어도 생각이 없고 잠들어도 꿈이 없으며, 사물이 오면 이름 붙이고 일이 오면 응한다. 임금은 나라의 마음이니, 마음이 다스려지면 모든 마디가 편안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모든 마디가 어지럽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다스려진 자는 사지를 서로 잊고, 그 나라가 다스려진 자는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잊는다.

도란 사물을 인도하는 것이요, 덕이란 본성을 붙드는 것이며, 인이란 은혜를 쌓아 드러난 증거요, 의란 사람의 마음에 견주어 무리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멸한 뒤 덕이 쓰이고, 덕이 쇠한 뒤 인의가 생긴다. 그러므로 상고(上世)는 도를 체득하여 덕을 의식하지 않았고, 중고(中世)는 덕을 지켜 무너뜨리지 않았으며, 말세(末世)는 오직 인의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군자는 인의가 없으면 살 수 없고 인의를 잃으면 살 까닭을 잃으며, 소인은 욕망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욕망을 잃으면 살 까닭을 잃는다. 그 두려워하는 바를 보면 각각 다름을 안다.

그 베풂이 두터운 자는 그 갚음이 아름답고, 그 원망이 큰 자는 그 화가 깊다. 박하게 베풀고 두텁게 바라며 원망을 쌓고도 환난이 없는 자는 고금에 있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가는 까닭을 살펴 그 오는 까닭을 안다.

정성이 안에서 형성되어 밖으로 감응함

군자는 허물을 보면 벌을 잊으므로 능히 간하고, 어진 이를 보면 천함을 잊으므로 능히 사양하며, 부족함을 보면 가난을 잊으므로 능히 베푼다. 정(情)이 가운데 매여 있으면 행실이 밖으로 드러난다. 무릇 행실이 정을 싣고 있으면 비록 허물이 있어도 원망이 없고, 그 정을 싣지 않으면 비록 충성스러워도 미움을 산다.

순(舜)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천하에 왕 노릇 한 것은 자기에게서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 까닭이 많으면 백성에게 속임이 많아진다. 몸이 굽었는데 그림자가 곧은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말로 미치지 못하는 것은 용모가 미치고, 용모로 미치지 못하는 것은 황홀함[感忽]이 미친다. 마음에 감응하고 지혜에 밝아 발하여 형체를 이룸이 정성의 지극함이다.

같은 말이라도 백성이 믿는 것은 믿음이 말보다 앞서기 때문이요, 같은 명령이라도 백성이 교화되는 것은 정성이 명령 밖에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위에 있으면 백성이 옮겨 교화되니, 정(情)으로 앞서기 때문이다. 위에서 움직여도 아래에서 응하지 않는 것은 정과 명령이 다르기 때문이다. 석 달 된 갓난아이는 이해를 알지 못하나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이 깨우쳐지는 것은 정이다. 그러므로 말의 쓰임은 밝고 밝아 작고, 말 없음의 쓰임은 넓고 넓어 크다.

무릇 밤에 행하는 바를 살피니 주공(周公)이 그림자에 부끄러워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음을 삼간다[愼其獨]. 선을 듣기는 쉬우나 몸을 바르게 하기는 어렵다. 문왕(文王)이 선을 듣기를 미치지 못할 듯이 하고, 선하지 않음을 하루도 묵히지 않기를 상서롭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군자와 소인, 작은 선의 축적

소인이 일을 함은 구차히 얻음[苟得]을 말하고, 군자는 구차히 의로움[苟義]을 말한다. 구하는 바는 같으나 기약하는 바는 다르다. 성인이 선을 행함은 명성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나 명성이 따르고, 명성은 이익과 기약하지 않으나 이익이 돌아온다.

군자는 즐거움이 남아돌고 명성이 부족하나, 소인은 즐거움이 부족하고 명성이 남아돈다. 남고 부족함이 서로 떨어진 것을 보면 밝게 멀다.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이익을 헤아리지 않으며, 소인은 이익을 탐하고 의를 돌아보지 않는다.

박한 것을 쌓아 두터움이 되고, 낮은 것을 쌓아 높음이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날로 부지런히 하여 빛을 이루고, 소인은 날로 불만하여 욕됨에 이른다. 그 줄고 늚을 이주(離朱)도 보지 못한다. 군자는 작은 선이라고 할 만하지 않다 하여 버리지 않으니 작은 선이 쌓여 큰 선이 되고, 작은 불선(不善)이라고 해로움이 없다 하여 행하지 않으니, 작은 불선이 쌓여 큰 불선이 된다.

공명을 이룸은 하늘이요, 이치를 따라 순함을 받음은 사람이다. 태공망(太公望)·주공단(周公旦)을 하늘이 무왕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요, 숭후(崇侯)·악래(惡來)를 하늘이 주(紂)를 위해 낳은 것이 아니니, 그 세상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있다. 가르침은 군자에게 근본하여 소인이 그 은택을 입고, 이익은 소인에게 근본하여 군자가 그 공을 누린다.

군자의 도는 가까우나 이를 수 없고 낮으나 오를 수 없으며, 실은 것이 없어도 이기지 못함이 없으니, 크면서 빛나고 멀면서 융성하다. 이 도를 안다면 남에게서 구할 수 없고 자기에게서 얻는다. 자기를 버리고 남에게서 구하면 멀어진다.

성품·천명과 화복

사람은 지을 수 없으나 할 수 있고, 할 수 있으나 이룰 수는 없다. 사람이 하면 하늘이 이룬다. 종신토록 선을 행해도 하늘이 아니면 행해지지 않고, 종신토록 불선을 행해도 하늘이 아니면 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과 불선은 나에게 달렸고, 화와 복은 나에게 달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따를 뿐이다.

성품[性]이란 하늘에서 받은 것이요, 천명[命]이란 때에 만난 것이다. 그 재목이 있어도 그 세상을 만나지 못함은 하늘이다. 태공이 무슨 힘이 있었으며 비간(比干)이 무슨 죄가 있었는가? 성품을 따라 뜻대로 행해도 혹은 해롭고 혹은 이로우니, 구함에 도가 있으나 얻음은 천명에 달렸다. 그러므로 군자는 능히 선을 행할 수 있으나 반드시 그 복을 얻음을 기필할 수 없고, 차마 그릇됨을 행하지 못하나 반드시 그 화를 면함을 기필할 수 없다.

물이 아래로 흘러 넓고 커지듯, 임금이 신하에게 낮추면 총명해진다. 임금이 신하와 공을 다투지 않으면 다스리는 도가 통한다. 도가 있는 세상은 사람을 나라에 주고, 도가 없는 세상은 나라를 사람에게 준다. 요(堯)가 천하에 왕 노릇 하면서도 근심이 풀리지 않다가 순에게 전한 뒤에야 근심이 풀렸으니, 근심하며 지키고 어진 이와 더불어 즐겁게 마쳐 그 이익을 사사로이 하지 않은 것이다.

정성과 명성, 화복의 호응

지혜에 통한 자는 얻으면서도 수고롭지 않고, 그 다음은 수고로우나 병들지 않으며, 그 아래는 병들면서도 수고롭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이 일을 함은 나아가고 물러남에 때를 잃지 않으니, 여름에 갈옷을 입고 수레에 올라 손잡이를 잡는 것과 같다. 노자(老子)가 상용(商容)에게 배워 혀를 보고 부드러움을 지킬 줄 알았고, 열자(列子)가 호자(壺子)에게 배워 그림자 기둥을 보고 뒤에 처할 줄 알았다.

도를 통한 자는 수레 굴대와 같아, 자기는 운행하지 않으면서 바퀴통과 더불어 천 리에 이르러 끝없는 근원에서 굴러간다. 사람이 자기를 미덥게 하기는 쉬우나, 옷을 뒤집어쓰고 스스로를 믿기는 어렵다.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 사람에게 네 가지 쓰임[四用]이 있다. 무엇을 네 가지 쓰임이라 하는가? 보아 형상화함은 눈보다 밝은 것이 없고, 들어 정밀하게 함은 귀보다 밝은 것이 없으며, 무겁게 닫음은 입보다 견고한 것이 없고, 머금어 간직함은 마음보다 깊은 것이 없다. 눈이 그 형체를 보고 귀가 그 소리를 들으며 입이 그 정성을 말하고 마음이 그 정수를 다하면, 만물의 변화가 다 지극함이 있다.

땅은 덕으로 넓어지고 임금은 덕으로 높아짐이 으뜸이요, 땅은 의로 넓어지고 임금은 의로 높아짐이 그 다음이며, 땅은 힘으로 넓어지고 임금은 힘으로 높아짐이 그 아래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자는 왕 노릇 하고, 잡박한 자는 패(霸) 노릇 하며, 하나도 없는 자는 망한다.

성인은 명예를 구하지 않고 비방을 피하지 않으며, 몸을 바로 하고 행실을 곧게 하니 뭇 사악함이 스스로 그친다.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복은 자기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화는 자기로 말미암아 생긴다.

천하에 지극히 귀한 것이 있으되 세위(勢位)가 아니요, 지극히 부유한 것이 있으되 금옥이 아니며, 지극히 장수하는 것이 있으되 천 년이 아니다.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본성에 돌아가면 귀하고, 정에 맞추어 만족할 줄 알면 부유하며, 죽고 사는 구분을 밝히면 장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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