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외편 09 선성(繕性)

장자(莊子) · 전국 장주 · 번역·감수 허유

세속의 학문으로 본성을 닦아(繕性)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주장이다. 염담으로 앎을 기르고 앎으로 염담을 기르는 옛 다스림의 도를 말하고, 덕이 차츰 쇠하여 본성을 잃은 역사를 서술하며, 진정한 은사(隱士)와 뜻을 얻음(得志)의 참뜻을 논한다.

원문 · 번역

繕性第十六 繕性於俗,俗學以求復其初;滑欲於俗,思以求致其明;謂之蔽蒙之民。

세속에서 본성을 닦아 세속의 학문으로 그 처음을 회복하려 하고, 세속에서 욕심을 어지럽혀 생각으로 그 밝음을 이루려 하니, 이를 가리고 어두운 백성(蔽蒙之民)이라 한다.

古之治道者,以恬養知;生而无以知為也,謂之以知養恬。知與恬交相養,而和理出其性。夫德,和也;道,理也。德无不容,仁也;道无不理,義也;義明而物親,忠也;中純實而反乎情,樂也;信行容體而順乎文,禮也。禮樂徧行,則天下亂矣。彼正而蒙己德,德則不冒。冒則物必失其性也。

옛날 도를 다스린 자는 염담(恬)으로 앎(知)을 길렀다. 나서 앎으로 하는 바가 없으니 이를 앎으로 염담을 기름이라 한다. 앎과 염담이 서로 길러주어 조화와 이치(和理)가 그 본성에서 나온다. 무릇 덕은 조화요, 도는 이치다. 덕이 용납하지 않음이 없음이 인(仁)이요, 도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음이 의(義)요, 의가 밝아 사물이 친함이 충(忠)이요, 속이 순수하고 진실하여 정으로 돌아감이 악(樂)이요, 미더운 행실과 용모가 무늬에 순함이 예(禮)다. 예악이 두루 행해지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저 사람이 바르되 제 덕을 가리면 덕이 덮이지 않으니, 덮이면 사물이 반드시 그 본성을 잃는다.

古之人,在混芒之中,與一世而得澹漠焉。當是時也,陰陽和靜,鬼神不擾,四時得節,萬物不傷,羣生不夭,人雖有知,无所用之,此之謂至一。當是時也,莫之為而常自然。

옛사람은 혼돈한 가운데 있어 한 세상과 더불어 담박함을 얻었다. 그때에는 음양이 조화롭고 고요하며, 귀신이 어지럽히지 않고, 사계절이 절도를 얻으며, 만물이 상하지 않고, 뭇 생명이 일찍 죽지 않으며, 사람이 비록 앎이 있어도 쓸 데가 없었으니, 이를 지극한 하나(至一)라 한다. 그때에는 하는 바가 없어도 늘 절로 그러했다.

逮德下衰,及燧人伏羲始為天下,是故順而不一。德又下衰,及神農黃帝始為天下,是故安而不順。德又下衰,及唐虞始為天下,興治化之流,𣻏淳散朴,離道以善,險德以行,然後去性而從於心。心與心識知而不足以定天下,然後附之以文,益之以博。文滅質,博溺心,然後民始惑亂,无以反其性情而復其初。

덕이 차츰 쇠함에 미쳐 수인씨(燧人氏)·복희씨(伏羲氏)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니, 그러므로 따르되 하나 되지 못했다. 덕이 또 차츰 쇠함에 미쳐 신농씨(神農氏)·황제(黃帝)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니, 그러므로 편안하되 따르지 못했다. 덕이 또 차츰 쇠함에 미쳐 당우(唐虞, 요·순)가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니, 다스림과 교화의 흐름을 일으켜 순박함을 깨고 흩어 도를 떠나 선(善)을 행하고 덕을 위태롭게 하여 행하니, 그런 뒤에 본성을 버리고 마음을 따랐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알되 천하를 정하기에 부족하니, 그런 뒤에 무늬(文)를 덧붙이고 박학(博)을 더했다. 무늬가 바탕을 없애고 박학이 마음을 빠뜨리니, 그런 뒤에 백성이 비로소 미혹되고 어지러워져 그 성정으로 돌아가 그 처음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由是觀之,世喪道矣,道喪世矣,世與道交相喪也,道之人何由興乎世,世亦何由興乎道哉!道无以興乎世,世无以興乎道,雖聖人不在山林之中,其德隱矣。

이로 보건대, 세상이 도를 잃고 도가 세상을 잃어, 세상과 도가 서로 잃었으니, 도를 지닌 사람이 무엇으로 세상에 일어나며, 세상이 또 무엇으로 도에 일어나겠는가! 도가 세상에 일어날 수 없고 세상이 도에 일어날 수 없으니, 비록 성인이 산림 속에 있지 않아도 그 덕이 숨는다.

隱,故不自隱。古之所謂隱士者,非伏其身而弗見也,非閉其言而不出也,非藏其知而不發也,時命大謬也。當時命而大行乎天下,則反一无迹;不當時命而大窮乎天下,則深根寧極而待;此存身之道也。

숨으므로 스스로 숨는 것이 아니다. 옛날 이른바 은사(隱士)란 그 몸을 엎드려 보이지 않는 자가 아니요, 그 말을 닫아 내지 않는 자가 아니며, 그 앎을 감추어 펴지 않는 자가 아니라, 때와 명(時命)이 크게 어긋났기 때문이다. 때와 명을 만나 천하에 크게 행해지면 하나로 돌아가 자취가 없고, 때와 명을 만나지 못하여 천하에 크게 궁하면 뿌리를 깊이 하고 지극히 편안히 하여 기다리니, 이것이 몸을 보존하는 도다.

古之行身者,不以辯飾知,不以知窮天下,不以知窮德,危然處其所而反其性已,又何為哉!道固不小行,德固不小識。小識傷德,小行傷道。故曰,正己而已矣。樂全之謂得志。

옛날 몸을 행한 자는 변론으로 앎을 꾸미지 않고, 앎으로 천하를 궁하게 하지 않으며, 앎으로 덕을 궁하게 하지 않고, 우뚝이 제 자리에 처하여 그 본성으로 돌아갈 따름이니, 또 무엇을 하겠는가! 도는 본디 작게 행하지 않고, 덕은 본디 작게 알지 않는다. 작은 앎은 덕을 상하고, 작은 행함은 도를 상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바르게 할 따름이다"라고 한다. 즐거움이 온전함을 일러 뜻을 얻음(得志)이라 한다.

古之所謂得志者,非軒冕之謂也,謂其无以益其樂而已矣。今之所謂得志者,軒冕之謂也。軒冕在身,非性命也,物之儻來,寄者也。寄之,其來不可圉,其去不可止。故不為軒冕肆志,不為窮約趨俗,其樂彼與此同,故无憂而已矣。今寄去則不樂,由(之)[是]觀之,雖樂,未嘗不荒也。故曰,喪己於物,失性於俗者,謂之倒置之民。

옛날 이른바 뜻을 얻음이란 수레와 면류관을 이름이 아니라, 그 즐거움에 더할 것이 없음을 이를 따름이다. 지금 이른바 뜻을 얻음이란 수레와 면류관을 이름이다. 수레와 면류관이 몸에 있음은 성명(性命)이 아니라 사물이 우연히 와서 잠시 부쳐진 것이다. 부쳐진 것은 그 옴을 막을 수 없고 그 감을 멈출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레와 면류관을 위해 뜻을 펴지 않고, 궁핍함을 위해 세속을 좇지 않으니, 그 즐거움이 저것과 이것이 한가지여서 그러므로 근심이 없을 따름이다. 지금 부쳐진 것이 떠나면 즐겁지 않으니, 이로 보건대 비록 즐거워도 일찍이 황폐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사물에서 자기를 잃고 세속에서 본성을 잃은 자를 일러 거꾸로 놓인 백성(倒置之民)이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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