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론3 귀직론(貴直論)
《여씨춘추》 육론(六論)의 셋째 논으로, 「귀직(貴直)」 이하 여섯 자편(子篇)으로 이루어진다. 곧은 말[直言]을 귀하게 여김을 논하는 「귀직」을 머리로, 곧게 간함을 말한 「직간(直諫)」, 변화를 미리 앎을 말한 「지화(知化)」, 이치를 거스름의 화를 말한 「과리(過理)」, 막힘의 폐단을 말한 「옹색(壅塞)」, 난리의 근원을 밝힌 「원란(原亂)」을 묶었다. 처세·논변·정치를 다룬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賢主所貴莫如士。所以貴士,為其直言也。
어진 임금이 귀하게 여기는 바로 선비만 한 것이 없으니, 선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곧은 말 때문이다.
凡智之貴也,貴知化也。
무릇 지혜를 귀하게 여김은 변화를 앎을 귀하게 여김이다.
亡國之主一貫,所以亡同者,樂不適也。
망국의 임금은 한가지로 꿰뚫리니, 망함이 같은 까닭은 즐김이 알맞지 않음이다.
亂國之主,患存乎用三石為九石也。
어지러운 나라의 임금은 병폐가 석 섬을 아홉 섬으로 여김에 있다.
번역
귀직(貴直) — 곧은 말을 귀하게 여김
어진 임금이 귀하게 여기는 바로 선비만 한 것이 없으니, 선비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 곧은 말[直言] 때문이다. 말이 곧으면 굽은 것이 드러난다. 임금의 병폐는 굽은 것을 듣고자 하면서 곧은 말을 미워함이니, 이는 그 근원을 막고 물을 바라는 것이라 물이 어디서 이르겠는가. 이는 원하는 바를 천히 하고 미워하는 바를 귀히 함이니, 원하는 바가 어디서 오겠는가.
능의(能意)가 제 선왕(齊宣王)을 뵈니, 선왕이 "과인이 그대가 곧음을 좋아한다 들었는데 그러한가" 하였다. 능의가 "제가 어찌 곧겠습니까. 저는 곧음을 좋아하는 선비는 집이 어지러운 나라에 처하지 않고 몸이 더러운 임금을 뵙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지금 왕을 뵙고 집이 제(齊)에 있으니 제가 어찌 곧겠습니까" 하였다. 선왕이 노하여 "촌놈이다!" 하며 죄주려 하니, 능의가 "신이 어려서 일을 좋아하고 자라서 행하였는데, 왕께서는 어찌 촌놈을 용납해 그 좋아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으십니까" 하니, 왕이 놓아주었다. 능의 같은 자는 임금 곁에서 삼가 논하게 해도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을 것이니,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음의 얻음이 어찌 적겠는가. 이는 어진 임금이 구하는 바요 못난 임금이 미워하는 바이다.
호원(狐援)이 제 민왕(齊湣王)에게 유세하여 "은(殷)의 솥이 주(周)의 조정에 진열되고 그 사직이 주의 담장에 덮였으며 그 방패와 도끼의 음악이 사람들의 놀이에 남았습니다. 망국의 음악은 종묘에 이르지 못하고, 망국의 사직은 하늘을 보지 못하며, 망국의 그릇이 조정에 진열됨은 경계 삼기 위함입니다. 왕께선 힘쓰소서. 제의 대려(大呂)를 조정에 진열하지 말고, 태공의 사직을 담장에 덮지 말며, 제의 음악을 사람들 놀이에 채우지 마소서" 하였다. 제왕이 받지 않으니, 호원이 나가 사흘 나라를 위해 곡하였다. … 마침내 동쪽 성문에서 처형되니, 호원은 처형을 즐긴 것이 아니라 나라가 이미 어지럽고 임금이 이미 어그러졌으므로 사직과 백성을 슬퍼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런 말을 함은 공평한 논의가 아니라 패망을 구하려 함이니, 본디 위태로움에 가깝다.
조간자(趙簡子)가 위(衛)의 외성을 칠 때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도 멀리 서서 가린 방패 아래 거하며 북을 쳐도 군사가 일어나지 않으니, 북채를 던지며 탄식하여 "아! 군사가 이처럼 빨리 무너지는가" 하였다. 행인 촉과(燭過)가 투구를 벗고 창을 비껴 나아가 "임금이 무능할 따름이지 군사가 무슨 무너짐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간자가 발끈해 "과인이 부릴 이가 없어 몸소 이 무리를 거느리는데, 그대가 친히 과인을 무능하다 하니, 설명이 있으면 좋거니와 없으면 죽으리라" 하였다. … 간자가 이에 가린 방패를 치우고 화살과 돌이 미치는 곳에 서니, 한 번 북 치자 군사가 다 올라탔다. 간자가 "혁거(革車) 천 승을 얻음이 행인 촉과의 한마디를 들음만 못하다" 하였다. 행인 촉과는 그 임금을 잘 간했다 할 만하니, 싸움터에서 북이 쓰이고 상을 더 후히 안 하고 벌을 더 무겁게 안 했는데도, 한마디에 군사가 모두 그 윗사람을 위해 즐거이 죽었다.
직간(直諫) — 곧게 간함
말이 지극하면 노하고, 노하면 설득하는 자가 위태롭다. 어진 자가 아니면 누가 위태로움을 무릅쓰겠는가. 어진 자가 아니면 이익을 구할 따름이니, 이익을 구하는 자가 위태로움을 무릅쓴들 무슨 이익인가. 그러므로 못난 임금에게는 어진 자가 없다. 어진 자가 없으면 지극한 말을 듣지 못하고, 지극한 말을 듣지 못하면 간사한 자가 작당하고 온갖 사악함이 다 일어나니, 이러면 보존할 길이 없다.
제 환공(齊桓公)·관중·포숙·영척(甯戚)이 함께 술 마시다 흥이 무르익자, 환공이 포숙에게 "어찌 일어나 축수하지 않는가" 하였다. 포숙이 잔을 받들고 나아가 "공께서 거(莒)로 망명하셨던 일을 잊지 마시고, 관중이 노(魯)에서 결박당했던 일을 잊지 말며, 영척이 수레 아래서 소 먹이던 일을 잊지 마소서" 하였다. 환공이 자리를 피해 두 번 절하며 "과인과 대부들이 모두 그대 말을 잊지 않는다면, 제나라 사직이 다행히 위태롭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때 환공은 더불어 지극한 말을 할 만하였으니, 지극한 말을 할 만하므로 더불어 패업을 이룰 수 있었다.
형 문왕(荊文王)이 여황(茹黃)의 개와 완로(宛路)의 주살을 얻어 운몽(雲夢)에서 사냥하느라 석 달 돌아오지 않고, 단(丹)의 미녀를 얻어 음란히 한 해 조회를 듣지 않았다. 보신(葆申)이 "선왕께서 점쳐 신을 보(葆)로 삼음이 길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 왕의 죄는 마땅히 매를 맞아야 합니다" 하니, 왕이 "포대기 벗고 제후 반열에 든 몸이니 고쳐 매는 면하기를 청한다" 하였다. 보신이 "신은 선왕의 명을 받들어 감히 폐하지 못합니다. 왕께서 매를 받지 않으면 선왕의 명을 폐함입니다. 신은 차라리 왕께 죄를 받을지언정 선왕께 죄를 받지 않겠습니다" 하니, 왕이 "삼가 그리하라" 하고 자리에 엎드렸다. 보신이 가는 가시 쉰 개를 묶어 꿇어앉아 등에 얹기를 두 번 하고 "왕은 일어나소서" 하니, 왕이 "매를 맞은 이름은 한가지다" 하였다. … 뒤에 형국이 서른아홉 나라를 겸병하였다. 형국을 이처럼 광대하게 한 것은 보신의 힘이요 지극한 말의 공이다.
지화(知化) — 변화를 앎
무릇 용맹으로 남을 섬기는 자는 죽음으로써 하니, 죽기 전에 죽음을 말함은 논함이 아니다. 무릇 지혜를 귀하게 여김은 변화를 앎[知化]을 귀하게 여김이다. 미혹된 임금은 그렇지 못해, 변화가 이르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변화가 이미 이르면 알아도 모름과 한가지다. … 위태로움과 곤궁함의 길,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함은 먼저 변화를 알지 못함에 있으니, 오왕 부차(吳王夫差)가 그러하다. 자서(子胥)가 변화를 먼저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간했으나 듣지 않으니 오가 폐허가 되고 화가 합려(闔廬)에게 미쳤다.
오왕 부차가 제(齊)를 치려 하니 자서가 "안 됩니다. 제와 오는 습속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아 그 땅을 얻어도 거할 수 없고 그 백성을 얻어도 부릴 수 없습니다. 오와 월(越)은 땅이 잇닿고 습속이 같으며 말이 통해 그 땅을 얻으면 거할 수 있고 그 백성을 얻으면 부릴 수 있습니다. 월에게 오도 그러합니다. 오·월의 형세는 양립할 수 없으니, 월은 오에게 심복(心腹)의 병과 같아 비록 발하지 않아도 그 상함이 깊어 안에 있습니다. 제는 오에게 옴과 버짐의 병이라 그 나음을 괴로워하지 않아도 상함이 없습니다. 지금 월을 놓고 제를 침은 범을 두려워하면서 멧돼지를 찌르는 것과 같아, 이겨도 뒤탈이 끝없습니다" 하였다. 태재 비(太宰嚭)가 "안 됩니다. … 왕께서 제를 쳐 이기면 군사를 옮겨 진(晉)에 임하시면 진이 반드시 명을 들으리니, 한 번에 두 나라를 복종시킴입니다" 하였다. 부차가 옳게 여겨 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태재 비의 꾀를 썼다. … 부차가 군사를 일으켜 제를 쳐 애릉(艾陵)에서 크게 이기고 돌아와 자서를 죽였다. 자서가 죽으며 "내 어찌 한 눈을 얻어 월인이 오에 들어옴을 볼까" 하고 자살하였다. 부차가 그 몸을 강에 흘려보내고 눈을 도려내 동문에 걸며 "네 어찌 월인이 우리에게 들어옴을 보겠느냐" 하였다. 몇 해 뒤 월이 오에 보복해 그 나라를 무너뜨리고 사직을 멸하니, 부차가 사로잡혔다. 부차가 죽으며 "죽은 자가 앎이 있다면 내 무슨 낯으로 지하에서 자서를 보랴" 하고 얼굴을 덮고 죽었다. 무릇 환난이 이르기 전엔 일러도 안 되고, 환난이 이미 이르면 알아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차가 자서에게 부끄러움을 안 것은 알지 못함만 못하다.
과리(過理) — 이치를 거스름
망국의 임금은 한가지로 꿰뚫리니, 천시가 다르고 일이 다르되 망함이 같은 까닭은 즐김이 알맞지 않음[樂不適]이다. 즐김이 알맞지 않으면 보존할 수 없다. 술지게미 언덕과 술 못[糟丘酒池], 고기 동산과 포락(炮格), 기둥을 새겨 제후를 묶음은 알맞지 않음이다. 귀후(鬼侯)의 딸을 형벌하고 그 고리를 취하며, 물 건너는 자의 정강이를 잘라 골수를 보고, 매백(梅伯)을 죽여 문왕(文王)에게 젓갈을 보냄은 알맞지 않음이다. … 임신부를 갈라 그 변화를 보고 비간(比干)을 죽여 그 심장을 봄은 알맞지 않음이다. 공자가 듣고 "그 구멍이 통했다면 비간이 죽지 않았으리라" 하였다. 이것이 하·상(夏商)이 망한 까닭이다.
진 영공(晉靈公)이 무도하여 위에서 사람을 쏘아 그 화살 피함을 구경하고, 요리사가 곰발바닥을 덜 익히자 죽여 부인에게 실어 조정을 지나게 해 위엄을 보였으니 알맞지 않음이다. 조돈(趙盾)이 자주 간했으나 듣지 않으니 공이 미워해 저미(沮麛)를 시켜 죽이게 하였다. 저미가 그를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해 "공경을 잊지 않으니 백성의 주인이다. 백성의 주인을 죽임은 불충이요 임금의 명을 버림은 불신이니, 이 중 하나라도 죽음만 못하다" 하고 조정의 회화나무에 부딪혀 죽었다.
제 민왕(齊湣王)이 망명해 위(衛)에 거하며 공왕단(公王丹)에게 "내가 어떤 임금인가" 하니, 단이 "왕은 어진 임금입니다. … 왕께서 나라를 떠나 위에 거하셔도 용모가 충만하고 안색이 환해 나라를 무겁게 여기는 뜻이 없으십니다" 하였다. 왕이 "참으로 좋다. 단이 과인을 안다. 과인이 나라를 떠나 위에 거한 뒤로 띠를 세 폭이나 늘렸다" 하였다.
송왕(宋王)이 가죽 부대에 피를 담아 높이 매달고 갑옷·투구를 쏘아 아래로 피가 땅에 흐르게 하니, 좌우가 모두 하례하여 "왕의 어짊이 탕·무(湯武)를 넘습니다. 탕·무는 사람을 이겼으나 지금 왕은 하늘을 이겼으니 어짊을 더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송왕이 크게 기뻐해 술 마실 때 방 안에서 만세를 부르는 자가 있자 마루 위가 다 응하고, 마루 위가 응하자 마루 아래가 다 응하며, 문밖 뜰에서 듣고 감히 응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알맞지 않음이다.
옹색(壅塞) — 막힘
망국의 임금은 곧은 말을 할 수 없다. 곧은 말을 할 수 없으면 허물이 들리는 길이 없고 선이 이를 데가 없다. 이를 데가 없으면 막힌다.
진 목공(秦繆公) 때 융(戎)이 강대하니, 목공이 여악(女樂) 열여섯 명과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이 크게 기뻐해 날마다 마시고 먹으며 밤낮 쉬지 않으니, 좌우에서 진의 도적이 이른다 말하는 자를 활로 쏘았다. 진의 도적이 과연 이르니, 융왕이 취해 술통 아래 누웠다가 산 채로 결박돼 사로잡혔다. 사로잡기 전엔 알 수 없고 사로잡은 뒤엔 또 알지 못하니, 잘 설득하는 자라도 이러하니 어째서인가.
제(齊)가 송(宋)을 치니, 송왕이 사람을 시켜 제 도적이 이른 곳을 살피게 하였다. 사자가 돌아와 "제 도적이 가까워 나라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하니, 좌우가 모두 "이는 살이 절로 벌레를 부르는 격입니다. 송의 강함과 제 군사의 약함으로 어찌 이렇겠습니까" 하였다. 송왕이 노해 그를 죽였다. 또 사람을 보내니 전과 같이 보고하자 또 죽였다. 이같이 세 번 하였다. 그 뒤 또 사람을 보내니 … "전혀 제 도적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나라 사람이 매우 편안합니다" 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고, 좌우가 모두 "앞서 죽은 자는 마땅하다" 하였다. … 도적이 이르자 왕이 수레에 올라 달아나니, 이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부유해졌다. 무릇 산에 올라 소를 보면 양 같고 양을 보면 돼지 같다. … 보는 형세가 지나친 것인데 소·양의 작음에 노함은 미친 자 중 큰 자이니, 미쳐서 상벌을 행하면 이것이 대씨(戴氏)가 끊긴 까닭이다.
제 선왕(齊宣王)이 활쏘기를 좋아해 자기가 센 활을 쓸 수 있다 함을 사람들이 말해 주는 것을 기뻐하였다. 일찍이 쓰던 것이 석 섬[三石]에 지나지 않는데 좌우에 보이니, 좌우가 모두 당겨 보다 중간에 멈추고 모두 "이는 아홉 섬[九石]은 되니, 왕이 아니면 누가 이를 쓰겠습니까" 하였다. 선왕의 실정은 쓰는 것이 석 섬에 지나지 않는데 종신토록 스스로 아홉 섬을 쓴다 여겼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 그러므로 어지러운 나라의 임금은 병폐가 석 섬을 아홉 섬으로 여김에 있다.
원란(原亂) — 난리의 근원
난리에는 반드시 차례가 있으니, 큰 난리 다섯, 작은 난리 셋, 토벌 셋이다. 그러므로 『시(詩)』에 "난리의 문을 지나지 말라" 하였으니 멀리하려 함이다. … 무왕(武王)이 무력으로 얻고 문덕으로 지켜, 창을 거꾸로 하고 활을 늦추어 천하에 군사를 쓰지 않음을 보였으니 지킴이다.
진 헌공(晉獻公)이 여희(驪姬)를 부인으로 세우고 해제(奚齊)를 태자로 삼으니, 이극(里克)이 나라 사람을 거느려 죽였다. 순식(荀息)이 그 아우 공자 탁(卓)을 세웠으나 장사 뒤 이극이 또 죽이니, 이에 진에 임금이 없었다. 공자 이오(夷吾)가 진(秦)에 땅을 후히 뇌물하고 들기를 구하니, 진 목공이 군사로 들여보내 혜공(惠公)이 되었다. 혜공이 진의 덕을 배반하고 땅을 주지 않으니, 목공이 쳐 한원(韓原)에서 싸워 진(晉)이 크게 패하고 혜공이 사로잡혔다. … 목공이 공자 중이(重耳)를 받들어 회공(懷公)을 쳐 고량(高梁)에서 죽이고 중이를 세우니 문공(文公)이다. 문공이 베풀고 폐한 자를 일으키며 … 때맞춰 백성을 부려 성복(城濮)에서 형인을 깨고 양왕(襄王)을 안정시키니, 안팎이 다 복종한 뒤에야 진의 난리가 그쳤다. 그러므로 헌공이 여희를 듣고 양오(梁五)·우시(優施)를 가까이해 태자 신생(申生)을 죽이니 큰 난리 다섯이 따라, 세 임금이 죽고 한 임금이 사로잡히며 대신·경사로 죽은 자가 백을 헤아리고 스무 해 동안 허물에 시달렸다. 윗세상 이래로 난리가 한 번이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난리 일으키는 자의 병폐는 모두 "한 번뿐이다" 하니, 이는 일을 헤아림이 실정과 다른 것이다. … 그러므로 무릇 난리 일으키는 자는 화가 제 몸에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
원문 전문 보기 (한문)
貴直
賢主所貴莫如士。所以貴士,為其直言也。言直則枉者見矣。人主之患,欲聞枉而惡直言,是障其源而欲其水也,水奚自至?是賤其所欲而貴其所惡也,所欲奚自來?
能意見齊宣王。宣王曰:「寡人聞子好直,有之乎?」對曰:「意惡能直?意聞好直之士,家不處亂國,身不見污君。身今得見王,而家宅乎齊,意惡能直?」宣王怒曰:「野士也!」將罪之。能意曰:「臣少而好事,長而行之,王胡不能與野士乎,將以彰其所好耶?」王乃舍之。能意者,使謹乎論於主之側,亦必不阿主。不阿主之所得豈少哉?此賢主之所求,而不肖主之所惡也。
狐援說齊湣王曰:「殷之鼎陳於周之廷,其社蓋於周之屏,其干戚之音,在人之游。亡國之音,不得至於廟;亡國之社,不得見於天;亡國之器陳於廷,所以為戒。王必勉之。其無使齊之大呂陳之廷,無使太公之社蓋之屏,無使齊音,充人之游。」齊王不受。狐援出而哭國三日,其辭曰:「先出也,衣絺紵;後出也,滿囹圄。吾今見民之洋洋然東走而不知所處。」齊王問吏曰:「哭國之法若何?」吏曰:「斮。」王曰:「行法。」吏陳斧質於東閭,不欲殺之,而欲去之。狐援聞而蹶往過之。吏曰:「哭國之法斮。先生之老歟昏歟?」狐援曰:「曷為昏哉?」於是乃言曰:「有人自南方來,鮒入而鯢居,使人之朝為草而國為墟。殷有比干,吳有子胥,齊有狐援。已不用若言,又斮之東閭。每斮者以吾參夫二子者乎!」狐援非樂斮也,國已亂矣,上已悖矣,哀社稷與民人,故出若言。出若言非平論也,將以救敗也,固嫌於危。此觸子之所以去之也,達子之所以死之也。
趙簡子攻衛附郭,自將兵。及戰,且遠立,又居於犀蔽屏櫓之下,鼓之而士不起,簡子投桴而歎曰:「鳴呼!士之速弊一若此乎?」行人燭過免冑橫戈而進曰:「亦有君不能耳,士何弊之有?」簡子艴然作色曰:「寡人之無使,而身自將是眾也,子親謂寡人之無能,有說則可,無說則死。」對曰:「昔吾先君獻公即位五年,兼國十九,用此士也。惠公即位二年,淫色暴慢,身好玉女,秦人襲我,遜去絳七十,用此士也。文公即位二年,底之以勇,故三年而士盡果敢;城濮之戰,五敗荊人;圍衛取曹,拔石社;定天子之位,成尊名於天下;用此士也。亦有君不能耳,士何弊之有?」簡子乃去犀蔽屏櫓而立於矢石之所及,一鼓而士畢乘之。簡子曰:「與吾得革車千乘也,不如聞行人燭過之一言。」行人燭過可謂能諫其君矣,戰鬥之上,枹鼓方用,賞不加厚,罰不加重,一言而士皆樂為其上死。
直諫
言極則怒,怒則說者危,非賢者孰肯犯危?而非賢者也,將以要利矣。要利之人,犯危何益?故不肖主無賢者。無賢則不聞極言,不聞極言則姦人比周、百邪悉起,若此則無以存矣。凡國之存也,主之安也,必有以也。不知所以,雖存必亡,雖安必危,所以不可不論也。
齊桓公、管仲、鮑叔、甯戚相與飲酒酣,桓公謂鮑叔曰:「何不起為壽?」鮑叔奉杯而進曰:「使公毋忘出奔在於莒也,使管仲毋忘束縛而在於魯也,使甯戚毋忘其飯牛而居於車下。」桓公避席再拜曰:「寡人與大夫能皆毋忘夫子之言,則齊國之社稷幸於不殆矣。」當此時也,桓公可與言極言矣。可與言極言,故可與為霸。
荊文王得茹黃之狗,宛路之矰,以畋於雲夢,三月不反;得丹之姬,淫,期年不聽朝。葆申曰:「先王卜以臣為葆,吉。今王得茹黃之狗,宛路之矰,畋三月不反;得丹之姬,淫,期年不聽朝。王之罪當笞。」王曰:「不穀免衣繈褓而齒於諸侯,願請變更而無笞。」葆申曰:「臣承先王之令,不敢廢也。王不受笞,是廢先王之令也。臣寧抵罪於王,毋抵罪於先王。」王曰:「敬諾。」引席,王伏。葆申束細荊五十,跪而加之於背,如此者再,謂「王起矣」,王曰:「有笞之名一也。」遂致之。申曰:「臣聞君子恥之,小人痛之。恥之不變,痛之何益?」葆申趣出,自流於淵,請死罪。文王曰:「此不穀之過也。葆申何罪?」王乃變更,召葆申,殺茹黃之狗,析宛路之矰,放丹之姬。後荊國,兼國三十九。令荊國廣大至於此者,葆申之力也極言之功也。
知化
夫以勇事人者以死也,未死而言死,不論,以雖知之與勿知同。凡智之貴也,貴知化也。人主之惑者則不然。化未至則不知,化已至,雖知之與勿知一貫也。事有可以過者,有不可以過者。而身死國亡,則胡可以過?此賢主之所重,惑主之所輕也。所輕,國惡得不危?身惡得不困?危困之道,身死國亡,在於不先知化也。吳王夫差是也。子胥非不先知化也,諫而不聽,故吳為丘墟,禍及闔廬。
吳王夫差將伐齊,子胥曰:「不可。夫齊之與吳也,習俗不同,言語不通,我得其地不能處,得其民不得使。夫吳之與越也,接土鄰境,壤交通屬,習俗同,言語通,我得其地能處之,得其民能使之。越於我亦然。夫吳、越之勢不兩立。越之於吳也,譬若心腹之疾也,雖無作,其傷深而在內也。夫齊之於吳也,疥癬之病也,不苦其已也,且其無傷也。今釋越而伐齊,譬之猶懼虎而刺猏,雖勝之,其後患未央。」太宰嚭曰:「不可。君王之令所以不行於上國者,齊、晉也。君王若伐齊而勝之,徙其兵以臨晉,晉必聽命矣,是君王一舉而服兩國也,君王之令必行於上國。」夫差以為然,不聽子胥之言,而用太宰嚭之謀。子胥曰:「天將亡吳矣,則使君王戰而勝。天將不亡吳矣,則使君王戰而不勝。」夫差不聽。子胥兩袪高蹶而出於廷,曰:「嗟乎!吳朝必生荊棘矣。」夫差興師伐齊,戰於艾陵,大敗齊師,反而誅子胥。子胥將死曰:「與!吾安得一目以視越人之入吳也?」乃自殺。夫差乃取其身而流之江,抉其目,著之東門,曰:「女胡視越人之入我也?」居數年,越報吳,殘其國,絕其世,滅其社稷,夷其宗廟,夫差身為擒。夫差將死曰:「死者如有知也,吾何面以見子胥於地下?」乃為幎以冒面死。夫患未至,則不可告也;患既至,雖知之無及矣。故夫差之知慚於子胥也,不若勿知。
過理
亡國之主一貫,天時雖異,其事雖殊,所以亡同者,樂不適也。樂不適則不可以存。糟丘酒池,肉圃為格,雕柱而桔諸侯,不適也。刑鬼侯之女而取其環,截涉者脛而視其髓,殺梅伯而遺文王其醢,不適也。文王貌受以告諸侯。作為琁室,築為頃宮,剖孕婦而觀其化,殺比干而視其心,不適也。孔子聞之曰:「其竅通則比干不死矣。」夏、商之所以亡也。
晉靈公無道,從上彈人而觀其避丸也;使宰人臑熊𨆌不熟,殺之,令婦人載而過朝以示威,不適也。趙盾驟諫而不聽,公惡之,乃使沮麛。沮麛見之,不忍賊,曰:「不忘恭敬,民之主也。賊民之主不忠,棄君之命不信,一於此不若死。」乃觸廷槐而死。
齊湣王亡居衛,謂公王丹曰:「我何如主也?」王丹對曰:「王賢主也。臣聞古人有辭天下而無恨色者,臣聞其聲,於王而見其實。王名稱東帝,實辨天下。去國居衛,容貌充滿,顏色發揚,無重國之意。」王曰:「甚善!丹知寡人。寡人自去國居衛也,帶益三副矣」。
宋王築為櫱帝,鴟夷血,高懸之,射著甲冑,從下,血墜流地。左右皆賀曰:「王之賢過湯、武矣。湯、武勝人,今王勝天,賢不可以加矣。」宋王大說,飲酒。室中有呼萬歲者,堂上盡應,堂上已應,堂下盡應,門外庭中聞之,莫敢不應,不適也。
壅塞
亡國之主,不可以直言。不可以直言,則過無道聞,而善無自至矣。無自至則壅。
秦繆公時,戎彊大,秦繆公遺之女樂二八與良宰焉。戎王大喜,以其故,數飲食,日夜不休。左右有言秦寇之至者,因扞弓而射之。秦寇果至,戎王醉而臥於樽下,卒生縛而擒之。未擒則不可知,已擒則又不知。雖善說者猶若此,何哉?
齊攻宋,宋王使人候齊寇之所至。使者還,曰:「齊寇近矣,國人恐矣。」左右皆謂宋王曰:「此所謂肉自至蟲者也。以宋之強,齊兵之弱,惡能如此?」宋王因怒而詘殺之。又使人往視齊寇,使者報如前,宋王又怒詘殺之。如此者三。其後又使人往視:齊寇近矣,國人恐矣。使者遇其兄。曰:「國危甚矣,若將安適?」其弟曰:為王視齊寇,不意其近,而國人恐如此也。今又私患鄉之先視齊寇者,皆以寇之近也報而死。今也報其情,死;不報其情,又恐死;將若何?」其兄曰:「如報其情,有且先夫死者死,先夫亡者亡。」於是報於王曰:「殊不知齊寇之所在。國人甚安。」王大喜。左右皆曰:「鄉之死者宜矣。」王多賜之金。寇至,王自投車上馳而走,此人得以富於他國。夫登山而視牛若羊,視羊若豚。牛之性不若羊,羊之性不若豚,所自視之勢過也,而因怒於牛羊之小也,此狂夫之大者。狂而以行賞罰,此戴氏之所以絕也。
齊王欲以淳于髡傅太子,髡辭曰:「臣不肖,不足以當此大任也,王不若擇國之長者而使之。」齊王曰:「子無辭也。寡人豈責子之令太子必如寡人也哉?寡人固生而有之也。子為寡人令太子如堯乎?其如舜也?」凡說之行也,道不智聽智,從自非受是也。今自以賢過於堯、舜,彼且胡可以開說哉?說必不入。不聞存君。
齊宣王好射,說人之謂己能用彊弓也。其嘗所用不過三石,以示左右。左右皆試引之,中關而止,皆曰:「此不下九石,非王,其孰能用是?」宣王之情,所用不過三石,而終身自以為用九石,豈不悲哉?非直士其孰能不阿主?世之直士,其寡不勝眾,數也。故亂國之主,患存乎用三石為九石也。
原亂
亂必有弟,大亂五,小亂三,討亂三,故《詩》曰:「毋過亂門」,所以遠之也。慮福未及,慮禍之,所以兒之也。武王以武得之,以文持之,倒戈弛弓,示天下不用兵,所以守之也。
晉獻公立驪姬以為夫人,以奚齊為太子,里克率國人以攻殺之。荀息立其弟公子卓,已葬,里克又率國人攻殺之。於是晉無君。公子夷吾重賂秦以地而求入,秦繆公率師以納之,晉人立以為君,是為惠公。惠公既定於晉,背秦德而不予地。秦繆公率師攻晉,晉惠公逆之,與秦人戰於韓原。晉師大敗,秦獲惠公以歸,囚之於靈臺。十月,乃與晉成,歸惠公而質太子圉。太子圉逃歸也。惠公死,圉立為君,是為懷公。秦繆公怒其逃歸也,起奉公子重耳以攻懷公,殺之於高梁,而立重耳,是為文公。文公施舍,振廢滯,匡乏困,救災患,禁淫慝,薄賦斂,宥罪戾,節器用,用民以時,敗荊人于城濮,定襄王,釋宋,出穀戍,外內皆服,而後晉亂止。故獻公聽驪姬,近梁五、優施,殺太子申生,而大難隨之者五,三君死,一君虜,大臣卿士之死者以百數,離咎二十年。自上世以來,亂未嘗一。而亂人之患也,皆曰一而已,此事慮不同情也。事慮不同情者,心異也。故凡作亂之人,禍希不及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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