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大學)

대학·중용(大學·中庸) · 유가 경전 · 번역·감수 허유

《대학(大學)》은 본래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으나, 송대 정자(程子)와 주희(朱熹)가 표장하여 사서(四書)의 하나로 독립시켰다. 주희의 《사서장구집주》 구분을 따라 공자의 말을 증자가 기술한 경(經) 1장과, 증자의 뜻을 문인이 기록한 전(傳) 10장으로 나뉜다. 명명덕(明明德)·친민(親民)·지어지선(止於至善)의 삼강령(三綱領)과,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脩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八條目)을 통해 개인의 수양에서 천하의 다스림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번역

경 1장 (經一章)

대학(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묾에 있다.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정함이 있고, 정해진 뒤에야 고요할 수 있으며,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깝다.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했으며,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고, 그 몸을 닦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으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게 했고,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했으니, 앎을 지극히 함은 사물을 궁구함(格物)에 있다.

사물이 궁구된 뒤에야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뒤에야 뜻이 정성스러워지며, 뜻이 정성스러워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이며, 몸이 닦인 뒤에야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안해진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두텁게 할 것을 얇게 하고 얇게 할 것을 두텁게 하는 일은 있은 적이 없다.

(우경 1장(右經一章)은 대개 공자의 말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며, 그 전(傳) 10장은 증자의 뜻을 문인이 기록한 것이다. 구본에 착간이 자못 있어, 이제 정자가 정한 바를 따르고 다시 경문을 살펴 따로 차례를 매겨 아래와 같이 한다.)

전 1장 — 명명덕을 풀이함 (傳之首章)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능히 덕을 밝혔다" 하였고, 《태갑(大甲)》에 이르기를 "이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았다" 하였으며, 《제전(帝典)》에 이르기를 "능히 큰 덕을 밝혔다" 하였으니, 모두 스스로 밝힌 것이다.

(우전 1장은 명명덕(明明德)을 풀이한 것이다.)

전 2장 — 신민을 풀이함 (傳之二章)

탕왕의 세숫대야 명문에 이르기를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하였고, 《강고》에 이르기를 "백성을 새롭게 일으키라" 하였으며, 《시경》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은 오직 새롭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바가 없다.

(우전 2장은 신민(新民)을 풀이한 것이다.)

전 3장 — 지어지선을 풀이함 (傳之三章)

《시경》에 이르기를 "나라의 경기(京畿) 천 리는 오직 백성이 머무는 곳이다" 하였고, 《시경》에 이르기를 "지저귀는 꾀꼬리여, 언덕 모퉁이에 머무는도다"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머묾에 있어 그 머물 곳을 아니, 사람이면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셨다.

《시경》에 이르기를 "그윽하신 문왕이여, 아아 끊임없이 빛나며 공경히 머무셨도다" 하였다.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머물며,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머물고, 아비가 되어서는 자애에 머물며, 나라 사람과 사귐에는 신의에 머문다.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淇水)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빛나는 군자여, 자른 듯 다듬은 듯하고 쪼은 듯 간 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드러나니, 빛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 하였다. "자른 듯 다듬은 듯"이란 학문을 말함이요, "쪼은 듯 간 듯"이란 스스로 닦음이며, "엄밀하고 굳세다"는 것은 마음으로 두려워 삼감이요, "빛나고 드러난다"는 것은 위엄 있는 거동이며, "빛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이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아, 앞선 임금을 잊지 못하도다" 하였으니, 군자는 그 어짊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그 즐거움을 즐기고 그 이로움을 이롭게 여긴다. 이로써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우전 3장은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풀이한 것이다.)

전 4장 — 본말을 풀이함 (傳之四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송사를 듣고 판결함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게 해야 할 것이다" 하셨다. 진실하지 못한 자가 그 말을 다하지 못하게 함은 백성의 뜻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한다.

(우전 4장은 본말(本末)을 풀이한 것이다.)

전 5장 — 격물·치지를 풀이함 (傳之五章)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하며, 이것을 일러 앎이 지극하다고 한다.

(우전 5장은 대개 격물(格物)·치지(致知)의 뜻을 풀이한 것이나 지금은 없어졌다. 일찍이 정자의 뜻을 가만히 취하여 보충하기를 "이른바 치지가 격물에 있다는 것은, 나의 앎을 지극히 하고자 함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함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 마음의 신령함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다. 다만 이치에 궁구하지 못한 바가 있으므로 그 앎이 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 반드시 배우는 자로 하여금 무릇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아는 이치를 바탕으로 더욱 궁구하여 그 지극함에 이르기를 구하게 한다. 힘쓰기를 오래 하여 어느 날 활연히 관통하게 되면,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칢이 이르지 않음이 없고,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큰 작용이 밝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것을 일러 사물이 궁구되었다 하며, 이것을 일러 앎이 지극하다고 한다" 하였다.)

전 6장 — 성의를 풀이함 (傳之六章)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음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좋은 빛을 좋아하듯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스스로 만족함(自謙)이라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간다.

소인은 한가로이 거할 때 불선(不善)을 행하여 이르지 않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야 슬그머니 그 불선을 가리고 그 선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남이 자기를 봄이 마치 그 폐와 간을 보듯 하니, 그러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안에서 정성스러우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간다.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눈이 보는 바요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엄하도다" 하셨다.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德)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

(우전 6장은 성의(誠意)를 풀이한 것이다.)

전 7장 — 정심·수신을 풀이함 (傳之七章)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몸(마음)에 성냄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움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김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한다.

(우전 7장은 정심(正心)·수신(脩身)을 풀이한 것이다.)

전 8장 — 수신·제가를 풀이함 (傳之八章)

이른바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이 그 몸을 닦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은 그 친애하는 바에 치우치고, 천히 여기고 미워하는 바에 치우치며,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바에 치우치고, 가엾게 여기는 바에 치우치며, 거만히 대하고 게을리하는 바에 치우친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 나쁨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아는 자는 천하에 드물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런 말이 있으니 "사람은 제 자식의 나쁨을 알지 못하고, 제 곡식 싹의 큼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이것을 일러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다고 한다.

(우전 8장은 수신(脩身)·제가(齊家)를 풀이한 것이다.)

전 9장 — 제가·치국을 풀이함 (傳之九章)

이른바 나라를 다스림에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그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능히 남을 가르치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룬다. 효(孝)는 임금을 섬기는 까닭이요, 공손함(弟)은 어른을 섬기는 까닭이며, 자애(慈)는 무리를 부리는 까닭이다.

《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하라" 하였으니,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면 비록 적중하지 못하더라도 멀지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는 없다.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가 어짊을 일으키고, 한 집안이 사양하면 한 나라가 사양함을 일으키며, 한 사람이 탐욕스럽고 패려하면 한 나라가 난을 일으킨다. 그 기틀이 이와 같으니, 이것을 일러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한다.

요순이 천하를 인(仁)으로 거느리니 백성이 그를 따랐고, 걸주가 천하를 포악으로 거느리니 백성이 그를 따랐다. 그 명령하는 바가 그 좋아하는 바와 반대되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있은 뒤에야 남에게 요구하고, 자기에게 없은 뒤에야 남을 비난한다. 자기 몸에 간직한 것이 서(恕)하지 못하면서 능히 남을 깨우치는 자는 있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복숭아의 어여쁨이여, 그 잎이 무성하도다. 이 아가씨 시집감이여, 그 집안 사람을 마땅하게 하리로다" 하였으니, 그 집안 사람을 마땅하게 한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형에게 마땅하고 아우에게 마땅하다" 하였으니, 형에게 마땅하고 아우에게 마땅한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그 거동이 어긋나지 않으니 이 사방 나라를 바로잡는다" 하였으니, 그 아비와 자식, 형과 아우가 본받을 만한 뒤에야 백성이 그를 본받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나라를 다스림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있다고 한다.

(우전 9장은 제가(齊家)·치국(治國)을 풀이한 것이다.)

전 10장 — 치국·평천하를 풀이함 (傳之十章)

이른바 천하를 평안히 함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이 효를 일으키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이 공손함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외로운 이를 구휼하면 백성이 등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혈구(絜矩)의 도가 있다.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뒷사람을 앞서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고,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라. 이것을 일러 혈구의 도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즐거운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 하였으니, 백성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함, 이것을 일러 백성의 부모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깎아지른 저 남산이여, 오직 바위가 우뚝하도다. 빛나는 태사 윤씨여, 백성이 모두 너를 본다" 하였으니, 나라를 가진 자는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치우치면 천하의 죽임을 당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은나라가 무리(민심)를 잃지 않았을 때에는 능히 상제(上帝)에 짝하였으니,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삼을지어다. 큰 명은 보존하기 쉽지 않다" 하였으니, 무리를 얻으면 나라를 얻고 무리를 잃으면 나라를 잃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덕을 삼간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땅이 있으며, 땅이 있으면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쓰임이 있다.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니,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 백성을 다투게 하고 약탈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 그러므로 말이 어그러지게 나간 것은 또한 어그러지게 들어오고, 재물이 어그러지게 들어온 것은 또한 어그러지게 나간다.

《강고》에 이르기를 "오직 명은 일정하지 않다" 하였으니, 선하면 그것을 얻고 선하지 못하면 그것을 잃음을 말한 것이다. 《초서(楚書)》에 이르기를 "초나라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선(善)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고, 구범(舅犯)이 이르기를 "망명한 사람은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함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진서(秦誓)》에 이르기를 "만약 한 신하가 있어 한결같이 정성스럽고 별다른 재주는 없으나 그 마음이 너그러워 마치 받아들임이 있는 듯하여, 남이 가진 재주를 자기가 가진 듯이 여기고, 남의 훌륭하고 성스러움을 마음으로 좋아하여 입에서 나오는 칭찬만이 아니라 진실로 능히 받아들이면, 나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수 있으니 또한 이로움이 있으리라. 그러나 남이 가진 재주를 시기하여 미워하고, 남의 훌륭하고 성스러움을 어겨 통하지 못하게 하여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나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하지 못하니 또한 위태롭다 하리라" 하였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그런 자를 추방하여 사방 오랑캐 땅으로 내쳐 중국에서 함께하지 못하게 하니, 이것을 일러 오직 어진 사람만이 능히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능히 남을 미워할 수 있다고 한다. 어진 이를 보고도 들어 쓰지 못하고, 들어 쓰되 앞세우지 못함은 태만함(命)이요, 불선한 자를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고, 물리치되 멀리하지 못함은 허물이다. 남이 싫어하는 바를 좋아하고 남이 좋아하는 바를 싫어함, 이것을 일러 사람의 본성을 거스른다고 하니,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친다.

그러므로 군자에게는 큰 도가 있으니, 반드시 충성과 신의로써 그것을 얻고 교만과 방자함으로써 그것을 잃는다. 재물을 생산함에 큰 도가 있으니, 생산하는 자가 많고 먹는 자가 적으며, 일하는 자가 빠르고 쓰는 자가 더디면 재물이 항상 넉넉하다. 어진 자는 재물로써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자는 몸으로써 재물을 일으킨다. 윗사람이 인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이 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없고, 의를 좋아하면서 그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창고의 재물이 그 (임금의) 재물이 아닌 경우는 없다.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수레 끄는 말을 기르는 집(대부)은 닭과 돼지를 살피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경대부)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으며, 백 대의 수레를 가진 집(제후·경)은 재물을 거두어들이는 신하를 두지 않는다. 재물을 거두어들이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낫다"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로움을 이로움으로 삼지 않고 의를 이로움으로 삼는다고 한다.

나라를 맡아 다스리면서 재물 쓰는 일에만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임금이) 소인을 선하다 여겨 소인으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해가 함께 이르니, 비록 선한 자가 있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을 일러 나라는 이로움을 이로움으로 삼지 않고 의를 이로움으로 삼는다고 한다.

(우전 10장은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풀이한 것이다. 무릇 전 10장 가운데 앞의 네 장은 강령의 취지를 통론하고, 뒤의 여섯 장은 조목의 공부를 세론하였다. 그 제5장은 선을 밝히는 요체요, 제6장은 몸을 정성스럽게 하는 근본이니, 처음 배우는 자에게 더욱 마땅히 힘써야 할 급한 일이다. 읽는 자는 그것이 가깝다 하여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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