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09 제도(制度)
《근사록》 권9 「제도(制度)」는 다스림의 법(治法)을 논한 편이다. 모두 27개 조목으로, 예악·교화·학교·종법(宗法)·경계(經界, 토지 구획)·병제·상장(喪葬) 등 구체적 제도를 다룬다. 다스림의 근본이 서더라도 다스림의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지극한 다스림의 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이 권의 취지이다.
(주: 이 권은 다스림의 법을 논한다. 다스림의 근본이 비록 서더라도 다스림의 도구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예악형정에 하나라도 갖추어지지 못함이 있으면 지극한 다스림의 공을 이루기에 부족하다.)
번역
1. 염계 선생이 말하였다. 옛적에 성왕이 예법(禮法)을 제정하고 교화를 닦으니, 삼강(三綱)이 바르고 구주(九疇)가 펼쳐져 백성이 크게 화목하고 만물이 다 순조로웠다. 이에 음악을 지어 팔풍(八風)의 기운을 펴고 천하의 정(情)을 평화롭게 하였다. 그러므로 음악 소리가 담박하되 상하게 하지 않고 조화롭되 음란하지 않았다. 그 귀에 들어가 그 마음을 감동시켜 담박하고 조화롭지 않음이 없었다. 담박하면 욕심이 평정되고 조화로우면 조급한 마음이 풀린다. 너그럽고 부드러우며 평화롭고 중정함은 덕의 성함이요, 천하가 중도로 교화됨은 다스림의 지극함이다. 이를 도가 천지에 짝한다 이르니 옛적의 지극함이다. 후세에는 예법이 닦이지 않고 정사와 형벌이 가혹하고 문란하여, 욕심을 방종히 하고 법도를 무너뜨려 아래 백성이 곤고하였다. 옛 음악은 들을 만하지 못하다 하여 시대마다 새 소리로 바꾸니, 요사스럽고 음란하며 시름겹고 원망스러워, 욕심을 돋우고 슬픔을 더하여 스스로 그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임금을 해치고 아비를 버리며 생명을 가벼이 여기고 인륜을 무너뜨려도 금할 수 없는 자가 있었다. 아아! 음악이란 옛적에는 마음을 평정하였으나 지금은 욕심을 돕고, 옛적에는 교화를 폈으나 지금은 원망을 키운다. 옛 예를 회복하지 않고 지금 음악을 바꾸지 않으면서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고자 함은 요원하다.
2. 명도 선생이 조정에 아뢰었다. 천하를 다스림은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재를 얻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마땅히 먼저 예로써 근시(近侍)의 어진 선비와 모든 집사(執事)에게 명하여, 덕업이 충분히 갖추어져 사표가 될 만한 자를 마음을 다해 찾아 천거하게 한다. 그 다음으로 뜻이 독실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재질이 좋고 행실이 닦인 자를 초빙하여 정중히 보내 경사(京師)에 모은다. 아침저녁으로 더불어 바른 학문을 강명(講明)하게 하되, 그 도는 반드시 인륜에 근본하고 사물의 이치에 밝아야 한다. 그 가르침은 소학(小學)의 물 뿌리고 비질하며 응대하는 것에서부터,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닦고 예악에 두루 익히게 한다. 권유하고 격려하며 점차 감화시켜 성취시키는 도에 모두 절차와 순서가 있게 한다. 그 요점은 선을 택하고 몸을 닦아 천하를 교화하여 이룸에 이르는 데 있으니, 향인(鄉人)으로부터 성인의 도에 이를 수 있다. 그 학문과 행실이 모두 여기에 맞는 자를 덕을 이룬 자로 삼는다. 재질과 식견이 밝고 통달하여 선으로 나아갈 만한 자를 취해 날마다 그 학업을 받게 한다. 그 학문이 밝고 덕이 높은 자를 택하여 태학(太學)의 스승으로 삼고, 그 다음 자들로써 천하의 학교를 나누어 가르치게 한다. 선비를 택해 학교에 들이되, 현(縣)에서 주(州)로 올리고 주에서 태학에 빈례로 천거한다. 태학이 모아 가르쳐 해마다 그 어질고 능한 자를 조정에 논천(論薦)한다. 무릇 선비를 뽑는 법은 모두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고 깨끗하며, 집에 거하여 효제하고, 염치와 예양(禮遜)이 있으며, 학업에 통명하고 다스림의 도에 통달한 자로 한다.
3. 명도 선생이 열 가지 일을 논하였다. 첫째 사부(師傅), 둘째 육관(六官), 셋째 경계(經界), 넷째 향당(鄉黨), 다섯째 공사(貢士), 여섯째 병역(兵役), 일곱째 민식(民食), 여덟째 사민(四民), 아홉째 산택(山澤), 열째 분수(分數)이다. 그 말에 이르기를, 고금이 없고 치란이 없이 백성을 살리는 이치에 다함이 있으면, 성왕의 법에 고칠 만한 것이 있다. 후세에 능히 그 도를 다하면 크게 다스려지고, 혹 그 치우친 것을 쓰면 조금 평안해진다(小康). 이것이 역대로 환하게 드러난 효험이다. 진실로 옛것에 얽매일 줄만 알고 오늘날에 베풀지 못하며, 한갓 이름만 좇으려다 그 실질을 폐한다면, 이는 비루한 선비의 견해이니 어찌 다스림의 도를 논하기에 족하겠는가? 그러나 만약 지금 사람의 정(情)이 모두 이미 옛날과 다르고 선왕의 자취를 지금 회복할 수 없으니, 눈앞의 편의만 좇고 높고 먼 것을 힘쓰지 않는다 한다면, 이 또한 크게 일을 할 만한 논의가 아니어서 오늘날의 지극한 폐단을 구제하기에 부족할까 두렵다.
4. 이천 선생이 상소하여 말하였다. 삼대(三代) 때에는 임금에게 반드시 사(師)·부(傅)·보(保)의 관직이 있었다. 사는 도로써 가르치고, 부는 덕의(德義)로 도우며, 보는 그 신체를 보호한다. 후세에는 일을 함에 근본이 없어, 다스림을 구할 줄만 알고 임금을 바로잡을 줄 모르며, 허물을 바로잡을 줄만 알고 덕을 기를 줄 모른다. 덕의로 돕는 도가 진실로 이미 소홀해졌고, 신체를 보호하는 법은 다시 들리지도 않는다. 신은 생각건대, 덕의로 돕는 것은 보고 듣는 그릇됨을 막고 즐기는 욕심의 지나침을 절제하는 데 있고, 신체를 보호하는 것은 기거(起居)의 마땅함을 알맞게 하고 두려워 삼가는 마음을 보존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 이미 보(保)·부(傅)의 관을 두지 않았으니, 이 책임이 모두 경연(經筵)에 있습니다. 바라건대 황제께서 궁중에 계실 때 말과 행동, 의복과 음식을 모두 경연관이 알게 하소서. 오동잎을 자르는 장난(翦桐之戲)이 있으면 일에 따라 경계하여 바로잡고, 보양하는 방도를 어기면 때에 맞추어 간하여 그치게 하소서.
5. 이천 선생이 삼학(三學)의 조제(條制)를 자세히 살펴 말하였다. 옛 제도에 공사(公私)의 시험과 보충이 거의 빈 달이 없었다. 학교는 예의로 서로 앞세우는 곳인데 달마다 다투게 하니 자못 교양(教養)의 도가 아니다. 청컨대 시험을 고과(課)로 고치고, 미치지 못한 바가 있으면 학관(學官)이 불러서 가르치되 다시 고하(高下)를 정하지 말게 하소서. 존현당(尊賢堂)을 지어 천하의 도덕 있는 선비를 맞이하고, 빈객을 대접하는 관리와 스승의 재실(吏師齋)을 두며, 사인(士人)의 행실을 검찰하는 등의 법을 세우소서. 또 이르기를, 원풍(元豐) 이후로 이익으로 유인하는 법을 두어 국학(國學)의 해액(解額, 정원)을 5백 명까지 늘리니 오는 자가 몰려들었다. 부모 봉양을 버리고 골육의 사랑을 잊은 채 도로를 왕래하며 타향에 떠도니, 인심이 날로 야박해지고 선비의 기풍이 날로 엷어졌다. 지금 1백 명만 헤아려 남기고, 나머지 4백 명은 주군(州郡)의 해액이 좁은 곳에 나누어 두고자 한다. 그러면 자연히 선비들이 각기 향토에 편안히 거하여, 그 효성과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분주히 떠도는 뜻을 그쳐 풍속도 마땅히 조금 두터워질 것이다. 또 이르기를, 삼사(三舍)의 승보(升補)하는 법은 모두 문서를 살펴 자취를 따지니, 유사(有司)의 일이요 학교에서 인재를 기르고 빼어남을 논하는 도가 아니다. 대개 조정이 법을 줌에 반드시 아래에 통하게 하니, 장관이 법을 지키면서도 하는 바가 없게 된다. 이로써 일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아래가 그 위를 제어하게 되니, 이것이 후세에 다스려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장(長)·이(貳)의 자리에 적임자를 얻으면 좋겠으나, 혹 적임자가 아니면 막고 단속함이 상세하고 치밀하여 따라 지킬 수 있느니만 못하다"고 한다. 이는 선왕이 법을 제정함은 사람을 기다려 행하는 것이니, 적임자를 얻지 못할 것을 대비한 법을 세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진실로 장·이가 적임자가 아니어서 교육의 도를 알지 못하고 한갓 헛된 문서와 치밀한 법만 지킨다면, 과연 인재를 이루기에 족하겠는가?
6. 명도 선생의 행장(行狀)에 이르기를, 선생이 택주(澤州) 진성령(晉城令)이 되어, 백성이 일로 고을에 이르면 반드시 효제충신을 일러주어, 들어와서는 부형을 섬기는 까닭과 나가서는 어른을 섬기는 까닭을 가르쳤다. 향촌의 멀고 가까움을 헤아려 오보(伍保)를 만들어 부역을 서로 돕고 환난을 서로 구휼하게 하니 간사함과 거짓이 용납될 곳이 없었다. 무릇 고아와 외로운 자, 병들고 폐질한 자는 친척과 향당에 책임 지워 그 거처를 잃지 않게 하였다. 그 길을 지나는 나그네가 질병이 있으면 모두 보살핌이 있게 하였다. 여러 향에 모두 학교를 두고, 한가한 때 친히 가서 부로(父老)를 불러 더불어 이야기하였다. 아동이 읽는 책은 친히 구두(句讀)를 바로잡아 주고, 가르치는 자가 좋지 못하면 바꾸어 두었다. 자제 중 빼어난 자를 택해 모아 가르쳤다. 향민(鄉民)이 사회(社會)를 만들면 그를 위해 규약을 세웠다. 선악을 가려 권면함과 부끄러움이 있게 하였다.
7. 췌(萃)괘에 "왕이 종묘를 둔다"고 하였다. 전에 이르기를, 뭇 생령이 지극히 많으나 그 귀의하여 우러름을 하나로 할 수 있고, 인심이 그 향할 곳을 알지 못하나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하게 할 수 있으며, 귀신은 헤아릴 수 없으나 그 와서 이르게 할 수 있다. 천하가 인심을 모으고 뭇 뜻을 총괄하는 도가 하나가 아니나, 그 지극히 큰 것은 종묘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왕자가 천하의 도를 모음이 종묘를 둠에 이르면 모으는 도의 지극함이다. 제사로 보답함은 인심에 근본하니, 성인이 예를 제정하여 그 덕을 이룰 따름이다. 그러므로 승냥이와 수달도 제사할 줄 아니 그 본성이 그러하다.
8. 옛적의 수자리(戍役)는 두 해를 지나 돌아왔다. 올해 늦봄에 떠나면 이듬해 여름에 교대할 자가 이르고, 다시 머물러 가을을 대비하다가 11월을 지나 돌아왔다. 또 그 이듬해 한봄에 다음 수자리 갈 자를 보냈다. 매년 가을과 초겨울에는 두 무리의 수자리 군사가 모두 변경에 있으니, 곧 지금의 방추(防秋, 가을철 변방 방비)이다.
9. 성인은 한 가지 일도 천시(天時)를 따르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는다(至日閉關).
10. 한신(韓信)이 (군사를) 많을수록 더 잘 다스린다 한 것은 다만 분수(分數, 편제와 통솔의 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11.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사람을 통솔함에도 모름지기 법이 있어야 하니, 한갓 엄하기만 해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지금 천 명을 거느리면서 천 명으로 하여금 때에 맞추어 밥을 먹게 할 수 있는 자, 이만한 자도 몇이나 되겠는가? 일찍이 이르기를, 군중에 밤에 놀람이 있을 때 아부(亞夫, 주아부)는 굳게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한다. 일어나지 않음은 좋으나, 그래도 밤에 놀란 것은 어째서인가? 또한 다 좋지는 못한 것이다.
12. 천하 인심을 통솔하고 종족을 거두며 풍속을 두텁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보계(譜系)를 밝히고 세족(世族)을 거두며 종자법(宗子法)을 세워야 한다.
13. 종자법이 무너지면 사람이 자기가 온 곳을 알지 못하여 사방으로 떠돌게 된다. 종종 친척이 끊어지지 않았는데도 서로 알지 못한다. 지금 우선 한둘 거공(巨公)의 집안에서 시험 삼아 행해 보되, 그 방법은 구속하여 지키게 함을 요한다. 모름지기 우선 당(唐)나라 때처럼 묘원(廟院)을 세우고, 아울러 조업(祖業)을 나누어 쪼개지 못하게 하여 한 사람이 그것을 주관하게 한다.
14. 무릇 사람의 집안 법도는 모름지기 달마다 한 번 모임을 가져 종족을 화합하게 한다. 옛사람에게 화수위가(花樹韋家)의 종회법(宗會法)이 있으니 취할 만하다. 족인(族人)이 멀리서 올 때마다 또한 한 번 그것을 행한다. 길흉과 혼인 따위에는 다시 서로 예를 행하여, 골육의 정이 늘 서로 통하게 한다. 골육이 날로 소원해지는 것은 다만 서로 보지 못하여 정이 서로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5. 관혼상제(冠昏喪祭)는 예의 큰 것이다. 지금 사람은 모두 이를 알지 못한다. 승냥이와 수달도 모두 근본에 보답할 줄 안다. 지금 사대부 집안이 흔히 이를 소홀히 한다. 봉양에는 두텁고 선조에는 박하니 매우 옳지 못하다. 내가 일찍이 육례(六禮)를 닦았다. 대략, 집에는 반드시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반드시 신주가 있어, 매월 초하루에 반드시 새 음식을 올리고, 철마다의 제사는 중월(仲月)에 쓰며, 동지에는 시조(始祖)에게 제사하고, 입춘에는 선조(先祖)에게 제사하며, 계추(季秋)에는 아버지(禰)에게 제사하고, 기일(忌日)에는 신주를 정침(正寢)으로 옮겨 제사한다. 무릇 죽은 이를 섬기는 예는 마땅히 산 이를 봉양함보다 두터워야 한다. 사람의 집안이 이러한 몇 가지 일을 보존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린 자라도 점차 예의를 알게 할 수 있다.
16. 그 묏자리(宅兆)를 점치는 것은 그 땅의 좋고 나쁨을 점치는 것이다. 땅이 좋으면 그 신령이 편안하고 그 자손이 번성한다. 그러면 무엇을 땅이 좋은 것이라 이르는가? 흙빛이 빛나고 윤택하며 초목이 무성한 것이 곧 그 징험이다. 그런데 구애되고 꺼리는 자는 땅의 방위를 가리고 날의 길흉을 정함으로써 미혹되니, 심한 자는 선조 받드는 것을 헤아리지 않고 오로지 후손을 이롭게 하는 것만 생각한다. 더욱 효자가 편안히 장사하는 마음이 아니다. 오직 다섯 가지 우환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모름지기 훗날 도로가 되지 않고, 성곽이 되지 않으며, 도랑이나 못이 되지 않고, 귀하고 세력 있는 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밭갈이가 미치지 않게 해야 한다.
17. 정숙(正叔, 정이)이 말하였다. 우리 집안이 상을 치를 때 부도(浮圖, 불교)를 쓰지 않았다. 낙양(洛陽)에서도 한둘의 집안이 교화되었다.
18. 지금 종자(宗子)가 없으므로 조정에 세신(世臣)이 없다. 만약 종자법을 세우면 사람이 조상을 높이고 근본을 중히 여길 줄 알 것이다. 사람이 이미 근본을 중히 여기면 조정의 형세가 절로 높아진다. 옛적에는 자제가 부형을 따랐는데 지금은 부형이 자제를 따르니, 근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한고조(漢高祖)가 패(沛)를 함락시키려 할 때, 다만 비단에 글을 써서 패의 부로(父老)에게 주니 그 부형이 곧 자제를 거느려 따를 수 있었다. 또 사마상여(相如)가 촉(蜀)에 사신 갔을 때도 글을 보내 부로를 책망하니, 그런 뒤에야 자제가 모두 그 명을 듣고 따랐다. 다만 하나의 존비상하(尊卑上下)의 구분이 있은 뒤에야 순순히 따라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만약 법으로써 연결함이 없으면 어찌 가능하겠는가? 또 종자법을 세움은 또한 천리(天理)이다. 비유컨대 나무에는 반드시 뿌리에서 곧게 올라온 한 줄기가 있고 또 반드시 곁가지가 있으며, 또 물과 같이 비록 멀어도 반드시 바른 근원이 있고 또 반드시 갈라진 지류가 있는 것과 같으니, 자연의 형세이다. 그러나 또 곁가지가 발달하여 줄기가 되는 것도 있다. 그러므로 "옛적에 천자가 나라를 세우면 제후가 종(宗)을 빼앗는다"고 한 것이다.
19. 형화숙(邢和叔)이 명도 선생의 일을 서술하여 말하였다. 요순과 삼대 제왕의 다스림이 넓고 크며 유원(悠遠)하여 위아래로 천지와 함께 흐르는 까닭을, 선생은 진실로 이미 묵묵히 알고 있었다. 예악을 일으켜 만들고 제도와 문위(文爲)에 이르며, 아래로는 군사를 부리고 진을 치는 법에 이르기까지 강구하지 않음이 없어 모두 그 극치에 이르렀다. 밖으로 오랑캐의 정상(情狀), 산천과 도로의 험하고 평탄함, 변방의 방수(防戍)와 성채와 척후, 요충을 통제하는 요점을 궁구하여 알지 못함이 없었다. 그 관리의 일을 처결함과 문법(文法)·부서(簿書)에 또한 모두 정밀하고 상세하며 능숙하였다. 선생 같은 분은 통유(通儒)요 전재(全才)라 이를 만하다.
20. 개보(介甫, 왕안석)가 "율(律, 법률)은 팔분서(八分書, 예서)와 같다"고 한 것은 그가 (옳게) 보아 안 것이다.
21.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병략(兵謀)과 군율(師律)은 성인이 부득이하여 쓰는 것이다. 그 술법은 삼왕(三王)의 방책과 역대의 간서(簡書)에 보인다. 오직 지사(志士)와 인인(仁人)만이 그 멀고 큰 것을 알아, 평소에 미리 대비하여 감히 소홀히 잊지 않을 수 있다.
22. 육형(肉辟, 신체형)을 지금 세상의 사형 가운데서 취하면 또한 백성의 죽음을 너그럽게 하기에 족하다. 이를 지나면 마땅히 그것이 흩어진 지 오래되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23. 여여숙(呂與叔)이 횡거 선생의 행장을 지어 이르기를, 선생은 개연히 삼대의 다스림에 뜻이 있었다. 사람 다스리는 우선의 임무를 논함에 일찍이 경계(經界, 토지 구획)를 급선무로 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일찍이 이르기를, 인정(仁政)은 반드시 경계에서 시작된다. 빈부가 고르지 못하고 교양에 법이 없으면 비록 다스림을 말하고자 해도 모두 구차할 뿐이다. 세상이 행하기 어렵다 하는 까닭은 일찍이 부자(富者)의 밭을 급히 빼앗는다는 말 때문이 아닌 적이 없으나, 이 법의 시행은 기뻐하는 자가 많으니, 진실로 처리함에 방법이 있어 몇 년을 기약하면 한 사람도 형벌하지 않고도 회복할 수 있다. 병통은 다만 위에서 행하지 않는 데 있을 뿐이다. 이에 말하기를, "비록 천하에 행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한 고을에 시험할 수는 있다." 바야흐로 배우는 자들과 더불어 옛 법을 의논하여, 함께 밭 한 구역을 사서 몇 개의 정(井)으로 구획하고, 위로는 공가(公家)의 부역을 잃지 않으며, 물러나 사사로이 경계를 바로잡아 택리(宅裏)를 나누고, 거두는 법을 세우며, 저축을 넓히고, 학교를 일으키며, 예속(禮俗)을 이루고, 재앙을 구하고 환난을 구휼하며, 근본을 두텁게 하고 말단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선왕의 끼친 법을 미루고 오늘날 행할 만함을 밝히기에 족하였으나, 이는 모두 뜻만 있고 이루지 못하였다.
24. 횡거 선생이 운암령(雲巖令)이 되어, 정사는 대체로 근본을 두텁게 하고 풍속을 좋게 함을 우선으로 삼았다. 매달 길일에 술과 음식을 갖추어 향인(鄉人) 중 나이 많은 이를 현청에 모아 친히 권하고 술잔을 돌렸다. 사람으로 하여금 노인을 봉양하고 어른을 섬기는 뜻을 알게 하였다. 이로 인해 백성의 질고를 묻고, 자제를 훈계하는 뜻을 일러주었다.
25.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옛적에 "동궁(東宮)이 있고 서궁(西宮)이 있으며 남궁(南宮)이 있고 북궁(北宮)이 있어, 궁은 달리하되 재산은 함께하였다." 이 예 또한 행할 만하다. 옛사람은 멀리 생각하였으니, 눈앞에는 비록 서로 소원한 듯하나 실은 이와 같이 해야 오래도록 서로 친할 수 있다. 대개 수십 백 명의 식구를 가진 집안은 음식과 의복을 한결같이 하기 어렵다. 또 궁을 달리해야 자식이 그 사사로움을 펼 수 있다. 그래서 "자식의 사사로움을 피하는 것이다. 자식이 그 아비에게 사사로이 하지 못하면 자식이 되지 못한다." 옛사람은 인정을 곡진히 다하였으니, 반드시 궁을 함께한다면, 숙부와 백부가 있는데 자식 된 자가 어찌 홀로 그 아비에게만 두터이 하겠으며, 아비 된 자가 또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는가? 부자가 궁을 달리함은 명사(命士) 이상이며, 귀할수록 더욱 엄하였다. 그러므로 궁을 달리함은 마치 지금 세상에 각기 거처를 두는 것과 같으니, 따로 사는 것(異居)과는 다르다.
26. 천하를 다스림에 정전(井田, 井地)에 말미암지 않으면 끝내 고르게 할 수 없다. 주(周)나라의 도는 다만 균평(均平)일 뿐이다.
27. 정전(井田)은 마침내 봉건(封建)으로 귀결되어야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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