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05 승마(乘馬)
나라의 계량(計量)과 경제 제도를 다룬 편으로, "승마(乘馬)"는 계책·셈을 뜻한다. 국도(國都)를 세우는 입지, 통치의 대수(大數), 땅·조정·시장·황금·제후의 다섯 가지 근본, 음양과 사계절, 토지 등급에 따른 환산(地均), 행정·군사 편제, 사·농·공·상의 분업과 성인의 백성 분담론을 셈의 논리로 전개한다.
핵심 구절 — 원문과 번역
無爲者帝,爲而無以爲者王,爲而不貴者霸。
(작위함이 없는 자는 제요, 작위하되 작위함으로 삼지 않는 자는 왕이며, 작위하되 귀히 여기지 않는 자는 패다.)
地者,政之本也。
(땅은 정치의 근본이다.)
今日不爲,明日亡貨。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재화를 잃는다.)
번역
입국(立國) — 국도의 입지
무릇 국도를 세움은 큰 산 아래가 아니면 반드시 넓은 냇가 위에 한다. 높아도 가뭄에 가깝지 않아 물 쓰임이 넉넉하고, 낮아도 물에 가깝지 않아 도랑과 둑을 줄인다. 하늘의 재료를 따르고 땅의 이로움에 나아가니, 성곽은 반드시 규구(規矩)에 맞을 필요가 없고 도로는 반드시 준승(準繩)에 맞을 필요가 없다.
대수(大數)
작위함이 없는 자는 제(帝)요, 작위하되 작위함으로 삼지 않는 자는 왕(王)이며, 작위하되 귀히 여기지 않는 자는 패(霸)다. 스스로 귀하다 여기지 않음은 임금의 도요, 귀하되 법도를 넘지 않음은 신하의 도다.
음양(陰陽) — 땅과 정치의 근본
땅은 정치의 근본이요, 조정은 의(義)의 이치요, 시장은 재화의 표준이요, 황금은 쓰임의 척도요, 제후의 땅인 천승의 나라는 그릇(器)의 제도다. 이 다섯은 그 이치를 알 수 있으니 행함에 도(道)가 있다. 땅이 정치의 근본이므로 땅으로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 땅이 고르고 조화롭지 못하면 정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일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봄·가을·겨울·여름은 음양(陰陽)의 옮겨감이요, 때의 길고 짧음은 음양의 이로운 쓰임이며, 낮과 밤의 바뀜은 음양의 변화다. 그러한즉 음양이 바르다. 비록 바르지 못해도 남는 것을 덜 수 없고 모자란 것을 더할 수 없으니, 천지도 능히 덜거나 더하지 못한다. 그러한즉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땅이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땅을 바로잡으면 그 실상이 반드시 바르니, 길어도 바르고 짧아도 바르며 작아도 바르고 커도 바르다.
작위(爵位)
조정은 의의 이치이므로 작위가 바르면 백성이 원망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면 어지럽지 않으니 그런 뒤에 의가 다스려진다. 한 나라 사람이 모두 귀할 수 없으니, 모두 귀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가 이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작위의 높낮이를 분별하면 선후의 차례와 귀천의 의를 알게 된다.
무시사(務市事) — 시장의 일
시장은 재화의 표준이므로 온갖 재화가 싸지면 온갖 이익이 얻어지지 않고, 이익이 얻어지지 않으면 온갖 일이 다스려지며, 온갖 일이 다스려지면 온갖 쓰임이 절약된다. 일은 헤아림에서 생기고 힘씀에서 이루어지며 거만함에서 잃는다. 그러므로 시장은 치란을 알 수 있고 많고 적음을 알 수 있으나, 많고 적음을 만들지는 못한다.
황금(黃金)과 임용(任) — 척도
황금은 쓰임의 척도이므로 황금의 이치를 분별하면 사치와 검소를 알고, 사치와 검소를 알면 온갖 쓰임이 절약된다. 검소하면 일을 상하고 사치하면 재화를 상한다. 검소하면 금이 천해지고, 금이 천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일을 상한다. 사치하면 금이 귀해지고, 금이 귀하면 재화가 천해지니 재화를 상한다. 재화가 다한 뒤에 모자람을 앎은 척도를 모름이요, 일이 끝난 뒤에 재화가 남음을 앎은 절도를 모름이다.
천하가 말을 타고 소를 부리되 싣는 무게에 제도가 있고, 하루 묵는 길에 멀고 가까움에 셈이 있다. 그러므로 제후의 땅인 천승의 나라란 땅의 크고 작음을 알고 짐의 가볍고 무거움을 아는 것이다. 무거운 뒤에 더는 것은 짐을 모름이요, 가벼운 뒤에 더하는 것은 그릇을 모름이다.
지균(地均) — 토지 환산
먹을 수 없는 땅, 나무 없는 산은 백을 일(一)로 친다. 마른 못, 초목 없는 땅, 가시덤불이 섞여 백성이 들 수 없는 곳은 백을 일로 친다. 늪(藪)으로 낫과 새끼줄이 들 수 있는 곳은 아홉을 일로 친다. 덩굴 산으로 그 나무가 재목·굴대가 될 만하여 도끼가 들 수 있는 곳은 아홉을 일로 친다. 떠 있는 산으로 나무가 관·수레가 될 만하면 열을 일로 친다. 흐르는 물로 그물이 들 수 있으면 다섯을 일로 친다. 숲으로 나무가 관·수레가 될 만하면 다섯을 일로 친다. 못으로 그물이 들 수 있으면 다섯을 일로 친다. 이를 일러 지균(地均)이라 하여 실수(實數)로 삼는다.
사방 육 리를 폭(暴)이라 하고, 다섯 폭을 부(部), 다섯 부를 취(聚)라 한다. 취에는 시장이 있다. 다섯 취를 어느 향(鄕)이라 하고, 네 향을 방(方)이라 하니 관제(官制)다. 다섯 집을 오(伍), 열 집을 연(連), 다섯 연을 폭, 다섯 폭을 장(長)이라 하고 어느 향이라 하며, 네 향을 도(都)라 하니 읍제(邑制)다. 네 취를 일 리(離), 다섯 리를 일 제(制), 다섯 제를 일 전(田), 두 전을 일 부(夫), 세 부를 일 가(家)라 하니 사제(事制)다. 사방 육 리를 일승(一乘)의 땅으로 한다. 일승은 네 마리 말이다. 한 말에 갑(甲) 일곱, 방패(蔽) 다섯이니, 네 수레에 갑 스물여덟, 방패 스물, 백도(白徒, 보병) 서른 명이 수레 둘을 받든다.
(이하 황금의 환산, 물의 깊이에 따른 징세 경감, 봉토의 수선 주기 등 셈의 세칙이 이어진다.)
사농공상(士農工商)
도(道)에 이르되, 땅을 고르게 나누고 힘을 분배하여 백성이 때를 알게 한다. 백성이 곧 시일의 이르고 늦음, 일월(日月)의 부족함, 기한(飢寒)이 몸에 이름을 안다. 이 때문에 밤에 자고 일찍 일어나 부자형제가 그 공을 잊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니, 백성이 노고를 꺼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르게 하지 않음이 악(惡)이 되니, 지리(地利)를 다할 수 없고 민력(民力)을 다 쓸 수 없다. 때로 일러 주지 않으면 백성이 알지 못하고, 일로 인도하지 않으면 백성이 하지 않는다. 더불어 재화를 나누면 백성이 바름을 얻은 줄 알고, 그 분배를 살피면 백성이 힘을 다한다.
선비가 박학하고 살핌이 있어도 군신(君臣)이 되지 않으면 공에는 참여하되 분배에는 참여하지 않고, 상인이 값의 귀천을 알고 날마다 시장에 이르되 관상(官賈)이 되지 않으면 공에는 참여하되 분배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공인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진실한 상인이 아니면 상업에서 먹지 못하고, 진실한 공인이 아니면 공업에서 먹지 못하며, 진실한 농부가 아니면 농업에서 먹지 못하고, 미더운 선비가 아니면 조정에 서지 못한다.
성인(聖人)
성인이 성인 된 까닭은 백성을 잘 나누기 때문이다. 성인이 백성을 나누지 못하면 백성과 같으니, 자기에게도 부족한데 어찌 성인이라 이름하랴. 그러므로 일이 있으면 쓰고 일이 없으면 백성에게 돌려주니, 오직 성인만이 백성에게 생업을 잘 맡긴다.
실시(失時)
때가 일을 처리함은 정밀하니 감추어 둘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르되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재화를 잃는다." 지난날은 이미 가서 오지 않는다.
(끝에 상·중·하 토지의 사방 리수에 따른 만실·천실의 도읍 환산(地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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